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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아들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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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3 21:20:10 수정 : 2017-10-13 23: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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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만나러 벽제 ○○추모공원 가요.” “아들이 거기에 근무하나요?” “아니요. 하늘나라에 있어요.”

추석을 이틀 앞둔 지난 2일 정오 무렵. 서울 도심을 출발해 경기 파주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구파발을 지나 막 벽제에 접어들고 있었다.

성묘객들로 꽉 찬 버스 안에서 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가진 것이라곤 오랫동안 손에 꼭 쥐어 꼬깃꼬깃해진 종잇조각 하나가 전부였다. 어느 정거장에 내려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할머니를 보며 다들 안쓰러워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랬다. 할머니의 큰아들은 39살 젊은 나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간 할머니는 매년 기일에 맞춰 둘째 아들이 모는 승용차를 타고 벽제 어느 추모공원에 있는 큰아들 묘소에 갔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워낙 길다보니 기일과 무관하게 큰아들 무덤이 꼭 찾고 싶었단다. 그런데 평소 군말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던 둘째가 이번에는 “연휴라 차도 엄청 막힐 텐데 나중에 가자”고 만류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기어이 둘째네 자가용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성묘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추모공원 이름이 적힌 쪽지를 들고 벽제행 버스에 오른 것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이제껏 한번도 대중교통으로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 어디서 내려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급하게 집을 나서느라 휴대전화를 빠뜨려 둘째와 통화할 길도 막혔다.

사연을 접한 주변 승객들은 딱히 도움을 줄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종이에 적힌 상호로는 스마트폰에서 검색이 되지 않았다. “추모공원 근처에 뭐가 있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비석용) 돌을 깎는 작업장에서 가깝고 바로 옆에 절도 있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벽제 지리를 제법 안다는 승객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할머니는 벽제 승화원 앞 정거장에서 하차했다. “오래 다녔으니까 조금만 걸으면 어디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입안에 몇 개 남지 않은 치아가 더욱 서글퍼 보였다. 승객 모두 한마음이 돼 ‘먼 길’ 떠나는 할머니를 응원했다. 부디 헤매지 말고 얼른 큰아들과 만나길.

김태훈 사회부 기자
옛말에 ‘부모는 산에,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부모를 잃은 자식의 심정이 아무리 비통해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아픔만큼은 아닐 것이다.

문득 배우 김해숙과 박진희가 열연한 영화 ‘친정엄마’가 떠오른다. 30대 한창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등진 딸을 그리워하는 어느 엄마의 얘기다.

영화 말미에 막 장례를 치른 엄마의 독백이 관객의 눈가를 적신다. ‘그거 아니?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제일 잘한 것은 너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제일로 후회하는 것은 그것도 너를 낳은 것이다. 사랑한다, 내 새끼.’

열흘가량 이어진 올 추석 연휴가 누군가에겐 즐거운 시간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북받치는 서러움과 외로움에 목놓아 울고 싶은 나날이었을 수도 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명절마다 슬픔을 곱씹어야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고령화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또 하나의 어두운 그늘을 본다.

김태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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