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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혼돈이 20세기 불평등 줄였다”

입력 : 2017-10-14 03:00:00 수정 : 2017-10-1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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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부의 불평등 감소 시기 분석해보니 / 전쟁·혁명·국가실패·대유행병 4騎士 맹위 / 日 경우 1938년 상위 1%가 소득 19.9% 독점 / 7년만에 6.4%로 ‘뚝’… 분배 잣대 지니계수 향상 / 2차대전 당시 佛도 최상위 재산 90%p 증발 / 소말리아는 무정부 시기 발전지표 되레 좋아져
발터 샤이델 지음/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4만원
불평등의 역사/발터 샤이델 지음/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4만원


불평등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2010년 세계 최고의 부자 388명은 인류의 절반인 하위 35억명의 개인 순자산을 합친 것만큼의 자산을 소유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턱을 통과하는 데 2014년에는 단 85명만이 필요로 했고, 2015년에는 62명으로 줄어들었다.

역사적으로 불평등은 지속됐지만, 기복은 존재했다. 불평등이 심화와 둔화를 반복해온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은 역사 속에서 불평등이 둔화했던 시기에 주목한다. 그는 신간 ‘불평등의 역사’에서 인류의 평화가 오래 지속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지며, 소득이 집중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역사에서 불평등이 감소했던 시기로 ‘대중동원전쟁’과 ‘변혁적 혁명’, ‘국가실패’, ‘치명적 대유행병’을 꼽으며, 이를 ‘평준화의 네 기사(騎士)’라고 부른다.

일본은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 중 하나였다. 1938년 일본 내 상위 1%는 총 소득신고의 19.9%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이들의 점유율은 7년 만에 6.4%로 곤두박질쳤다. 반면 국민소득 지니계수는 1930년대 후반 0.45∼0.65 수준을 유지하다 1950년대 중반 0.3까지 떨어졌다. 지니계수의 숫자가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해진 것이다. 저자는 이 시기 불평등이 완화된 역사적 사건으로 2차 세계대전을 꼽는다.

양차 대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으로 국민가계소득의 자본소득비중과 국내총생산(GDP)이 3분의 1 이상 추락했다. 엘리트층의 재산 붕괴는 2차 세계대전 중에도 계속됐다. 결과적으로 상위 0.01%의 재산가치는 1914∼1945년 90%포인트 이상 증발했다. 이것은 영국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말을 빌려 “20세기에 불평등을 줄인 것은 단연코 전쟁이라는 혼돈이었다. 더 큰 평등을 지향하는 점진적이면서도 합의에 기반을 둔 갈등 없는 발전이란 없었다”고 말한다. 

서울 구룡마을은 오늘날 강남에 위치한 마지막 판자촌이다. 구룡마을과 인근의 타워팰리스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가 간 충돌이 전쟁이라면 국가 내부적 충돌인 혁명도 평준화의 요소였다. 저자는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소득과 부의 분산을 가져왔던 20세기를 사례로 제시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불평등이 가장 극적으로 줄어든 곳은 러시아다. 혁명 지도자들은 지주들의 토지 재산권을 보상 없이 철폐했고, 은행 국유화와 개인의 은행 계좌 압수 등의 조처를 했다. 이는 지주계급 50만명의 전멸로 이어지고 혁명 이전 시대 말기 심했던 불평등은 볼셰비키 득세 이후 20년간 극적으로 하락했다.

공산주의 통치하의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재연됐다. 다만 평준화는 국가의 강압이 시장의 힘을 억누르는 동안에만 유지됐다. 러시아의 경우 소련 몰락 뒤 불평등이 폭증했다. 1980년대 소련 시절의 지니계수는 0.26∼0.27이었지만 2011년엔 0.51로 커졌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1984년 0.23에서 2014년 0.55가 됐다.

중국 당나라 왕조의 실패는 엘리트의 재산 파괴로 이어지며 평준화를 일으켰다. 당 말기 황실 지배계급에 부와 권력이 집중됐다. 그러나 황소의 난을 시작으로 혼란이 이어지며 부자들이 집중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됐다. 결국 당나라의 소멸과 함께 부자들 또한 괴멸됐다. 소말리아에서는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이 전복된 뒤 파벌싸움으로 영토가 분열되고 지배적인 정부 체제가 없는 상태가 오랜 기간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국가 붕괴 이후 대부분의 발전지표가 향상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소말리아의 사례에서 ‘걷잡을 수 없는 약탈국가가 무정부 상태보다 복지에 더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발견한다.

마지막 평준화의 기사는 대규모 감염병이다. 흑사병은 물리적 인프라는 파괴하지 않은 채 인구 수만 극적으로 줄어들게 했다. 생산성 향상 때문에 생산량은 인구가 줄어든 것보다는 덜 하락했고 1인당 평균 생산력과 수입이 증가하는 원인이 됐다. 토지 역시 노동력보다 풍부해졌고 지대와 이자율은 떨어졌다. 인구 감소는 노동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부와 소득 불균형을 약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저자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빈부 격차의 축소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라는 점에서 미래의 평준화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그는 미국의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말을 빌려 “우리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채택할 수도 있고, 소수의 손에 막대한 부가 집중되게 할 수도 있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라고 언급하며, 사실상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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