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 선운사 일대에 만발하는 꽃무릇은 잎과 꽃이 나오는 시기가 달라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의 일종이다. 다른 상사화들이 6월에서 8월 노란색 또는 연분홍색 꽃이 피어나지만 꽃무릇은 9월에서 10월에 붉은 색 꽃이 핀다. 군데군데 핀 몇 송이 꽃무릇이 마지막 화려함을 불태우고 있다. |
가수 송창식이 읊조린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을 곱씹어본다. 선운사에 가본 적이 있냐며 겨울 끝자락에 피고 떨어지는 동백을 보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했다. 꽃송이째 떨어져 붉게 대지를 물들이는 동백의 화려한 죽음을 통해 누군가를 한없이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하지만 전북 고창 선운사에선 겨울에 피는 동백 외에 가을에 화려하게 피는 붉은 꽃들도 이 설움을 대변할 듯싶다.
줄기가 올라와 잎이 돋은 후 피는 꽃이 아니다. 대가 올라온 뒤 붉디붉은 꽃이 대지를 덮는다. 이 꽃이 지고 난 후에야 잎이 새로 돋기 시작한다. 이 잎은 겨울을 나고 다음해 여름에 진다. 이후 꽃대가 올라온 후 다시 붉은 꽃이 고개를 든다. 꽃무릇. 잎과 꽃이 나오는 시기가 달라 서로를 만나지 못하고 애타게 그리워만 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상사화의 일종이다. 다른 상사화들이 6월에서 8월 노란색 또는 연분홍색 꽃을 피우고 지는데 꽃무릇은 9월에서 10월에 붉은 꽃을 피운다. 마치 꽃이 지면 단풍이 들고 짧은 가을도 서서히 끝나간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맘때 꽃무릇은 사실 끝물이다. 레드 카펫처럼 흐드러지게 핀 꽃무릇 군락은 없다. 군데군데 몇 송이들만이 마지막 화려함을 불태우고 있을 때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꽃무릇에게 군락보다는 애틋함을 더하는 한두 송이가 더 어울릴 듯싶다. 꽃무릇의 붉음이 사라지는 만큼 서서히 나뭇잎들이 붉게 변하며 가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럴 땐 선운사까지만 가긴 아쉽다. 도솔암까지 이어진 길을 걸으면 가을의 감흥을 좀 더 즐기는 것이 좋다.
도솔암에서는 마애불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바위 절벽에 조각된 불상이다. 흔한 불상이지만 의미는 크다. 이 불상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붉은 피를 흘린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동학농민군이 희망을 품고 한발 한발 나아갔던 그 길에서 무장읍성, 고창읍성 등을 만날 수 있다. 당시의 처절함은 사라지고 가을 정취가 곳곳에 녹아 있다.
◆가을 정취 무르익는 선운사
선운사는 많이 알려진 사찰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년)때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 고찰로, 검단선사가 평소 친하던 신라의 의운국사와 함께 진흥왕의 시주를 얻어 창건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사찰 자체도 유명하지만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는 것은 천연기념물이다. 주차장에서 선운사로 향하는 길에서 개울 건너편을 보면 절벽을 뒤덮은 초록 잎들을 볼 수 있다. 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고 올라가면서 송악이 자라고 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수백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크기가 보기 드물 정도로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가을 정취 무르익는 선운사
선운사는 많이 알려진 사찰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년)때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 고찰로, 검단선사가 평소 친하던 신라의 의운국사와 함께 진흥왕의 시주를 얻어 창건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사찰 자체도 유명하지만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는 것은 천연기념물이다. 주차장에서 선운사로 향하는 길에서 개울 건너편을 보면 절벽을 뒤덮은 초록 잎들을 볼 수 있다. 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고 올라가면서 송악이 자라고 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수백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크기가 보기 드물 정도로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사천왕상이 서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다른 전각을 짓고 남은 목재로 지었다는 만세루를 중심으로 대웅보전, 관음전, 영산전, 팔상전, 명부전 등 10여채의 전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보전 뒤편으로는 동백숲이 펼쳐져 있다. 산불로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는데, 3000여그루가 병풍처럼 사찰을 감싸고 있다. 송창식의 노래에 나오는 그 동백이다. 선운사 동백은 한겨울이 아닌 4월쯤 만개해 춘백으로 불린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다. 약 3.2㎞로 1시간 정도 걸어야 도솔암에 이른다. 길은 평탄하다. 길가의 활엽수들이 붉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보통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도솔암 가는 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사송이 늠름하게 서 있다. |
도솔암 바위 절벽에는 높이 17m의 마애불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
손화중이 마애불에서 비결을 꺼낸 다음해 동학농민운동 불길은 고창에서 타오른다.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기포지)에 모인 4000여명의 동학농민군은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하는 군사 대오를 갖추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농민군의 기세에 눌려 관군은 대항을 하지 못했고, 농민군은 고창읍성과 무장읍성 등을 점령하게 된다. 농민군은 읍성들을 점령한 뒤 옥사에 갇혀 있던 동학교도들을 풀어주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잠시나마 새 세상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민초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전북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고창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고창읍성을 점령한 후 옥사에 갇혀 있던 동학교도들을 풀어주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고창읍성은 다른 성에 비해 성곽 폭이 넓고 안정적이다. 성곽 위에 올라서면 고창시내 등 주위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다. |
고창읍성은 성곽에 올라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전체 성곽이 1700m에 이른다. 고창읍성에는 성밟기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한다. ‘머리에 돌을 이고 성을 한 번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번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번 돌면 극락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성곽 위에 올라서면 고창시내 등 주위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다. 성내엔 ‘맹종죽’으로 불리는 대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무장읍성은 사람의 발길이 뜸해 한적하다. 1990년대까지 무장읍성 안에 학교가 있어 학생들이 읍성 입구 진무루를 통해 등하교했다. |
바다를 끼고 있는 고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일몰이다.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 갯벌을 보며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구시포해변, 동호해변 등이 유명한데, 서해안 바람공원도 운치 있다.
고창 출신의 미당 서정주 선생.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 |
고창 서해안 바람공원에서는 갯벌 앞에 서있는 풍차와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들이 어우러진 일몰을 볼 수 있다. |
고창=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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