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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어떤 이는 새 세상을 꿈꿨고 어떤 이는 부끄러움을 읊조렸던…

입력 : 2017-10-13 10:00:00 수정 : 2017-10-12 17: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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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읍성·미당시문학관
전북 고창 선운사 일대에 만발하는 꽃무릇은 잎과 꽃이 나오는 시기가 달라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의 일종이다. 다른 상사화들이 6월에서 8월 노란색 또는 연분홍색 꽃이 피어나지만 꽃무릇은 9월에서 10월에 붉은 색 꽃이 핀다. 군데군데 핀 몇 송이 꽃무릇이 마지막 화려함을 불태우고 있다.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가수 송창식이 읊조린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을 곱씹어본다. 선운사에 가본 적이 있냐며 겨울 끝자락에 피고 떨어지는 동백을 보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했다. 꽃송이째 떨어져 붉게 대지를 물들이는 동백의 화려한 죽음을 통해 누군가를 한없이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하지만 전북 고창 선운사에선 겨울에 피는 동백 외에 가을에 화려하게 피는 붉은 꽃들도 이 설움을 대변할 듯싶다.

줄기가 올라와 잎이 돋은 후 피는 꽃이 아니다. 대가 올라온 뒤 붉디붉은 꽃이 대지를 덮는다. 이 꽃이 지고 난 후에야 잎이 새로 돋기 시작한다. 이 잎은 겨울을 나고 다음해 여름에 진다. 이후 꽃대가 올라온 후 다시 붉은 꽃이 고개를 든다. 꽃무릇. 잎과 꽃이 나오는 시기가 달라 서로를 만나지 못하고 애타게 그리워만 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상사화의 일종이다. 다른 상사화들이 6월에서 8월 노란색 또는 연분홍색 꽃을 피우고 지는데 꽃무릇은 9월에서 10월에 붉은 꽃을 피운다. 마치 꽃이 지면 단풍이 들고 짧은 가을도 서서히 끝나간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맘때 꽃무릇은 사실 끝물이다. 레드 카펫처럼 흐드러지게 핀 꽃무릇 군락은 없다. 군데군데 몇 송이들만이 마지막 화려함을 불태우고 있을 때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꽃무릇에게 군락보다는 애틋함을 더하는 한두 송이가 더 어울릴 듯싶다. 꽃무릇의 붉음이 사라지는 만큼 서서히 나뭇잎들이 붉게 변하며 가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럴 땐 선운사까지만 가긴 아쉽다. 도솔암까지 이어진 길을 걸으면 가을의 감흥을 좀 더 즐기는 것이 좋다.
 
도솔암에서는 마애불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바위 절벽에 조각된 불상이다. 흔한 불상이지만 의미는 크다. 이 불상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붉은 피를 흘린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동학농민군이 희망을 품고 한발 한발 나아갔던 그 길에서 무장읍성, 고창읍성 등을 만날 수 있다. 당시의 처절함은 사라지고 가을 정취가 곳곳에 녹아 있다.

◆가을 정취 무르익는 선운사

선운사는 많이 알려진 사찰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년)때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 고찰로, 검단선사가 평소 친하던 신라의 의운국사와 함께 진흥왕의 시주를 얻어 창건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사찰 자체도 유명하지만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는 것은 천연기념물이다. 주차장에서 선운사로 향하는 길에서 개울 건너편을 보면 절벽을 뒤덮은 초록 잎들을 볼 수 있다. 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고 올라가면서 송악이 자라고 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수백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크기가 보기 드물 정도로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생태숲을 흐르는 개울은 산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르는 선운천이다. 선운사에 가까워질수록 선운천 주위는 수풀이 우거져 어두워진다. 이 어둠의 끝에서 천왕문을 만난다.

사천왕상이 서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다른 전각을 짓고 남은 목재로 지었다는 만세루를 중심으로 대웅보전, 관음전, 영산전, 팔상전, 명부전 등 10여채의 전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보전 뒤편으로는 동백숲이 펼쳐져 있다. 산불로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는데, 3000여그루가 병풍처럼 사찰을 감싸고 있다. 송창식의 노래에 나오는 그 동백이다. 선운사 동백은 한겨울이 아닌 4월쯤 만개해 춘백으로 불린다.

경내의 고즈넉한 풍광에 사로잡힌 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대웅보전 오른편으로 나 있는 문을 지나면 성보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있는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독특한 이력을 품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도굴꾼이 금동지장보살좌상을 훔쳐 일본으로 넘겼다. 이 불상을 사들인 일본인의 꿈에 좌상이 나타나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하루빨리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질책을 했다. 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됐다. 결국 불상을 다른 이에게 넘겼는데, 두 번째 소장자 역시 같은 꿈을 꿨다. 몇 명의 손을 거친 불상은 1938년 선운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다. 약 3.2㎞로 1시간 정도 걸어야 도솔암에 이른다. 길은 평탄하다. 길가의 활엽수들이 붉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보통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도솔암 가는 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사송이 늠름하게 서 있다.
선운사를 출발해 활엽수길을 따라 2㎞ 정도 가면 높이 20m가 넘는 독특한 형태의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사송이다. 선운사 입구의 송악, 경내 동백나무 숲과 함께 선운사를 대표하는 천연기념물이다. 수령 600년 정도의 장사송은 다른 소나무와 달리 가지가 부챗살처럼 반듯하게 펼쳐져 있다. 옛 지명 장사현에서 장사송이란 이름을 따왔다.

도솔암 바위 절벽에는 높이 17m의 마애불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도솔암 왼편에 나 있는 계단길을 오르면 칠송대라 불리는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새겨져 있는 높이 17m의 마애불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을 만난다. 불상 가운데에 네모 표시가 돼 있다. 배꼽 부분이다. 그 속에 든 비결이 햇빛을 보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1890년 비결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당시 전라감사가 마애불의 가슴을 열어 비결을 꺼내려 했다. 그때 천둥이 치는 바람에 비결을 꺼내다 말고 도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3년 후인 1893년 동학교도의 남접 접주였던 손화중이 드디어 그 비결을 꺼냈다고 한다. 비결이 무엇인지 알려진 바 없다. 실제 비결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만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에게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동학 농민군의 자취따라

손화중이 마애불에서 비결을 꺼낸 다음해 동학농민운동 불길은 고창에서 타오른다.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기포지)에 모인 4000여명의 동학농민군은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하는 군사 대오를 갖추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농민군의 기세에 눌려 관군은 대항을 하지 못했고, 농민군은 고창읍성과 무장읍성 등을 점령하게 된다. 농민군은 읍성들을 점령한 뒤 옥사에 갇혀 있던 동학교도들을 풀어주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잠시나마 새 세상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민초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전북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고창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고창읍성을 점령한 후 옥사에 갇혀 있던 동학교도들을 풀어주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고창읍성은 다른 성에 비해 성곽 폭이 넓고 안정적이다. 성곽 위에 올라서면 고창시내 등 주위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다.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모양성이라는 이름은 보리모(牟)자, 볕양(陽)자를 쓴다. 동학농민운동과 관련된 이렇다 할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원형이 잘 보존된 성이다.

고창읍성은 성곽에 올라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전체 성곽이 1700m에 이른다. 고창읍성에는 성밟기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한다. ‘머리에 돌을 이고 성을 한 번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번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번 돌면 극락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성곽 위에 올라서면 고창시내 등 주위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다. 성내엔 ‘맹종죽’으로 불리는 대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무장읍성은 사람의 발길이 뜸해 한적하다. 1990년대까지 무장읍성 안에 학교가 있어 학생들이 읍성 입구 진무루를 통해 등하교했다.
무장읍성은 고창읍성에 비해 덜 알려져 사람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1990년대까지 무장읍성 안에 학교가 있어 학생들이 읍성 입구 진무루를 통해 등하교했다. 이에 진무루는 가장 아름다운 초등학교 정문이라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고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일몰이다.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 갯벌을 보며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구시포해변, 동호해변 등이 유명한데, 서해안 바람공원도 운치 있다. 

고창 출신의 미당 서정주 선생.
◆미당의 시와 함께하는 가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 전체를 외우진 못해도, 앞부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미당의 고향이 고창이다. 그의 고향이자 영면지인 선운리에는 미당시문학관이 조성돼 있다. 폐교된 선운초 봉암분교를 새롭게 단장해 조성했다. 문학관엔 그가 친필로 쓴 ‘국화 옆에서’, ‘선운사’ 등의 시와 행적이 전시돼 있다.

고창 서해안 바람공원에서는 갯벌 앞에 서있는 풍차와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들이 어우러진 일몰을 볼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인 1942년부터 1944년까지 발표한 친일문학 등도 가감 없이 그대로 전시돼 있다. 그는 다쓰시로 시즈오라는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오장 마쓰이 송가’ 등 11편의 친일문학을 발표했다. 태평양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하는 내용이다. 그가 쓴 시를 감추지 않고 볼 수 있게 해놓은 점이 인상깊다. 그의 작품 감상 외에도 건물 옥상 전망대에 올라 풍광 보는 것을 추천한다. 미당의 아름다운 시구를 본 후 옥상에서 서해 풍광을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 한 편을 읊을 수 있을 것이다.

고창=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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