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차 한잔 나누며] 재능기부 나섰다가 女야구 전도사 된 ‘불운한 천재’

관련이슈 차 한잔 나누며

입력 : 2017-10-08 19:49:10 수정 : 2017-10-08 19:49:1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대표팀 동봉철 감독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일과 마주한 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면서 어느새 그들과 하나가 된다. 동봉철(47) 한국 여자야구대표팀 감독이 그렇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동 감독은 지난 5월 한국여자야구연맹 관계자에게서 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여자야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감독을 맡아도 되나 잠시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는 KBS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넥스트앤뉴라는 스포츠매니지먼트사를 운영하느라 바빴지만 “내가 가진 기술을 전수하는 재능기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볍게 받아들였다”며 여자야구와 인연이 시작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경찰청 코치를 지낸 만큼 지도자 경험을 다시 살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8월 말 한국에서 열린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와 9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컵 등 두 대회에서 대표팀을 이끈 뒤 이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여자야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 특히 아시안컵에서는 전력 열세라는 전망을 깨고 3위에 올라 2018 월드컵 출전권을 따내는 쾌거를 일궈내기도 했다.

프로야구가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라지만 한국 여자야구는 아직 불모지에 가깝다. 동 감독은 “국제대회에 나가보면 한국 여자야구 실력이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털어놨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일본은 18세 이하 고교 선수들이 나섰지만 대부분 야구만 10년씩 한 엘리트 선수들이 나왔다. 대만도 모든 선수가 소프트볼 선수 출신이었다. 그나마 약체인 홍콩을 꺾어야 월드컵 티켓을 딸 수 있는 상황. 동 감독은 “홍콩도 월드컵 진출 욕심이 커서 메이저리그 코치를 데려왔더라. 객관적인 평가도 한국보다는 홍콩이 우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동봉철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30일 서울 공릉동 개인 사무실에서 여자야구의 발전을 위해 학교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반면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야구가 좋아 시작한 일반인들이다. 그나마 고교 2학년 김라경을 빼면 리틀야구 출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이나 대만 선수들은 투구나 타격 자세부터 완벽하지만 성인이 돼 야구를 시작한 한국 선수들은 폼조차 완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동 감독을 감동시킨 것은 여자야구 선수들의 열정이었다. 동 감독은 “3∼4위전이던 홍콩전에서 몸에 맞는 공 5개 나올 만큼 선수들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더라. 그전과 다른 응집력 있는 경기를 보여줬다”며 한 달이 넘은 지금도 그때의 감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사실 이번 여자대표팀은 최상의 전력이 아니었다. 최고의 팀을 꾸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었다. 동 감독은 “대표팀 소집 때문에 여러 명을 만났지만 하나같이 직장 때문에 사양했다. 생계가 걸려 있기에 더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며 “야구에 애정이 있어도 여건이 안 돼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현실이 너무 아쉽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최근 리틀야구에서 뛰는 여자선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 이후 선수생활이 보장되지 못해 좋은 자원들이 자라날 수 없는 환경을 안타깝게 여겼다. 동 감독은 “여자 선수들이 중고교와 실업에서 전문적인 선수로 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학교나 기업이 여자야구에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해준다면 성장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갖출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동 감독은 또 “프로야구 관중의 반 가까이가 여성이다. 요즘 한국야구가 위기라고 하는데, 여성들이 위기를 극복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마움에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야구계가 여자야구에 조금만 더 관심을 주고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프로야구단의 적극적인 지원도 촉구했다. 

동 감독이 이처럼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은 자신의 아쉬웠던 야구인생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신일고 중앙대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에서 프로야구 무대를 밟은 그는 데뷔 첫해 타율 0.317에 11홈런을 터뜨리며 무서운 신인으로 등장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후 찾아온 부상으로 부진에 빠졌고 해태와 LG, 한화를 거쳐 1999년 쌍방울에서 선수생활을 일찍 마감했던 ‘불운한 천재’였다. 동 감독이 선수로서 움츠렸던 날개를 여자야구를 통해 맘껏 펼쳐 보일지 주목된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