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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점 백 한판 칠까?" 오락과 도박 경계 '한 끗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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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02 08:00:00 수정 : 2017-10-02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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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백짜리 고스톱 한판 칠까?”

명절이면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나 지인들과 으레 심심풀이로 점 백 고스톱을 치곤한다. 두어 시간 치면 2~3만원 따는 사람이 생기고, 반대로 많게는 4~5만원을 잃기도 한다. 고스톱은 동네마다 룰이 다르다. ‘피박이네, 광박이네, 자뻑은 두 장’ 등을 따지면서 큰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불현 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 하나. ‘이웃집에서 도박판이 벌여졌다고 경찰에 신고하면 도박죄로 잡혀가려나?’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판돈이 적어도 명절 고스톱이 도박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형법 246조에 따르면 ‘도박을 한 사람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습범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벌이 높아진다. 도박죄에 대한 형량을 명시하면서도 ‘일시오락에 불과한 경우’는 예외로 두고 있다.

문제는 ‘일시오락’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법원은 도박한 장소와 시간, 도박한 사람의 직업, 판돈의 규모, 도박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도박죄로 처벌할 도박인지 일시오락인지를 가른다. 한 마디로 명절 고스톱이 ‘도박’인지 ‘오락’인지는 ‘한 끗’차라는 얘기다.

2009년 술값을 마련하고자 판돈 2만 2900원을 걸고 1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을 40여분 친 남성 3명이 기소됐으나 대법원은 도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원심 재판부가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로 저녁 술값을 마련하고자 고스톱을 쳤고 고스톱을 친 시간이 짧으며 판돈의 규모가 2만 2900원에 불과한 점” 등을 들어 당시 고스톱을 일시오락이라고 봤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강원도에 사는 70대 남성 A씨도 지난해 7월22일 마을회관에서 동네 사람들과 점당 100원에 고스톱을 쳤다가 도박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춘천지법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공개된 장소이고 판돈을 고려할 때 노인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스톱을 친 것까지 도박으로 볼 수 없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판돈이 작은 소규모 도박이라고 해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서울남부지법은 2012년 오전 4시부터 2시간가량 식당에서 속칭 ‘훌라’ 도박을 한 사람에게 벌금 50만원을 내라고 판결했다. 남부지법은 도박에 참여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 정도, 도박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친목을 위해 훌라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압수된 돈도 51만 7천원으로 적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대전에 사는 B씨도 지난 2015년 서로 안면이 없는 사람 7명을 집으로 불러들여 고스톱을 쳤다가 처벌받았다. 당시 판돈은 15만원 정도. 그러나 법원은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친목 도모를 위해 모인 것으로 보이지 않고, 5시간 30분간 장시간 고스톱을 한 점을 고려할 때 도박죄가 인정된다”며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아는 사람들과 친다고 해서 도박죄를 무조건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07년 인천에서 지인들과 2만원대 판돈이 오간 고스톱을 친 C씨가 법원에서 유죄를 받은 바 있다. C씨가 지인 2명과 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오간 판돈은 28700원. C씨는 친목 도모였다고 주장했으나 인천지법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피고인의 경제사정에 비춰 판돈이 결코 적은 액수라고 보기 어렵다”며 그에게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선고 유예가 되긴 했지만, 도박죄를 성립한다는 얘기로, 아무리 지인들끼리 쳤다고 해도 고스톱을 친 사람의 직업과 수입, 재산 보유 현황에 따라 얼마든지 도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판례다.

경찰 관계자는 “적은 액수의 고스톱이라도 생면부지인 사람과 즐길 경우엔 친목 도모로 보지 않고 도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판돈이 적더라도 심야에 장시간 오랫동안 이뤄지는 것도 도박 여부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또한 돈이 오고 간 게임을 벌인 사람들이 도박을 할 의도가 있었는지도 핵심적인 판단 근거”라면서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지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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