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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문 대통령, 인식이 유연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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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7 21:20:59 수정 : 2017-09-27 21: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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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부드러움이 강함 이겨
다수 국민은 진영싸움 외면
유연한 사고의 실용주의로
성공한 모두의 대통령 돼야
미국에서 살던 몇 년 전 겨울이다. 겨울비가 내렸다. 얼마나 춥던지 비는 내리자마자 바로 나뭇가지에 얼어붙었다. 앞마당에 있던 대나무도, 사과나무도 밤새 얼음비를 뒤집어썼다. 이튿날 아침 사과나무가 뿌리가 뽑힌 채 쓰러져 있었다. 어린아이의 아름쯤 되는 튼실한 나무였다. 쉽게 넘어질 리 없었다. 범인은 주변의 대나무 숲이었다. 대나무들이 얼음비 무게를 이기지 못해 일제히 고개를 숙인 끝에 사과나무를 넘어뜨린 것이다. 추위가 물러가자 대나무들은 나 보란 듯 일어섰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지혜를 확인한 경험이었다. 자연의 섭리가 이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매한가지다. 단순한 이 이치를 잊고 살기 쉽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유연하게 살기보다 바득바득 자기 주장을 관철해야 직성이 풀린다. 주변을 돌아보기보다 자신만의 직선로를 질주하는 데 열중할 뿐이다. 가는 길에 비도 오고 눈도 오는 게 인생이라면서 꿋꿋이 달려나간다. 하지만 눈을 감고 똑바로 눈길을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직진인 줄 알았던 걸음이 실상은 곡선이거나 굴곡진 것이었음을.

박희준 논설위원
개인의 삶조차 굴곡으로 점철되는데 수많은 개인의 집합체야 어떻겠는가. 다양한 주의와 주장, 요구가 뒤섞여 복잡다난하기만 하다. 입으로 다양성을 외치면서도 발길은 진영으로 향한다. 흑백 논리, 진영 논리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야 지지세력을 모으기가 쉽다. 원전이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선 아니면 악이다. 보수가 사용자 편만 들었다면서 진보는 부지런히 노동자 편을 든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올려주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저성과자일지라도 해고도 마음대로 못하게 보호할 대상이다.

모든 사안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알바생을 줄이고 편의점 주인이 더 일하겠다고 한다. 영세 상인을 보호하려고 대형마트를 월 2회 일요일 의무휴업을 하도록 했더니 고객은 늘지 않고 온라인 쇼핑몰만 콧노래를 부른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고 하니 연줄로 자리를 얻은 이들까지 공무원이 될 판이다. 임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줬더니 이제 공무원이라면서 자기가 하던 일을 맡을 임시직부터 구하려고 하더란다. 무언가 밀어붙이기 전에 두루 살펴야 하는 이유다.

침묵하는 다수는 진보와 보수의 아귀다툼에 질려 있다. 흑백 어디도 아닌 중간지대에 선 이들이다. 이들의 표심을 노리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극중주의를 들고 나왔다.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매진하는 노선이라고 한다. 사안마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면 갈지자 궤적일 수밖에 없다. 절대선을 추구하는 극중주의는 가능하지도 않다. 극중에 서 있는데 좌와 우가 동시에 좌 또는 우로 움직였을 때 여전히 극중일까. 결국 극중주의는 실용주의로 들린다.

실용주의 사고는 유연하다. 원전이나 사드의 필요성에 회의적이면서도 현실론을 받아들인다.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한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서 변화가 느껴진다. 거칠게 몰아붙이던 정책들이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당장 가동을 중단할 것 같던 신고리원전 5·6호기는 공론화 과정에 부쳤고 지지세력의 반대에도 사드 배치를 마쳤다. 공무원 증원이나 수능 절대평가제 등도 마냥 밀어붙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북한 문제도 대화만을 강조하던 입장에서 한·미 공조와 대북제재로 중심추가 옮겨갔다. 이제는 지지세력 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식이 바뀌기보다 전략적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한 인사한테서 끔찍한 말을 들었다. 보수진영에서는 문 대통령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라가 잘되는 것보다 망가진 진영을 재건하는 일에 관심이라니 무섭기만 하다. 문 대통령이 진보진영 대통령으로서 길만을 걷는다면 내부 균열은 더욱 커질 것이다.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안보 문제만큼은 좌나 우의 이념을 떠나 엄중한 현실을 직시해 대응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위해 문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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