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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에 보호자 '갑질'… 장애인 활동보조인 두 번 운다

입력 : 2017-09-27 19:23:56 수정 : 2017-09-27 21: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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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인식·처우 개선 시급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하려면 종교도 맞아야 하나요?”

올해로 장애인 활동보조인 5년차를 맞는 김모(58·여)씨는 최근 뇌병변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어린이를 맡게 됐다. 아이가 말도 잘하고 하는 짓이 워낙 귀여워 성심껏 돌보던 김씨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둬달라는 통보를 듣게 됐다. 장애아 어머니의 직업은 무속인인데, 아이가 김씨의 집에 있는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상을 본 게 발단이 됐다. 아이 어머니는 “천주교를 믿는 활동보조 선생님에게는 내 아이를 맡길 수 없다”며 복지관에 활동보조인 교체를 요청했단다. 김씨는 “이유를 듣고 너무나 황당했다. 이것도 일종의 갑질 아닌가”라며 한 숨을 쉬었다.

2007년 도입된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는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으로 인해 혼자서 생활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자립생활과 사회 참여을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이 제도 속에서 생겨난 직업이 바로 장애인 활동보조인이다. 민주노총 산하 돌봄노조가 추산하고 있는 전국 장애인 활동보조인은 약 3만5000명이다.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것도 어려운 이들 중 상당수가 장애인 보호자들의 횡포와 갑질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김씨는 “예전에 몸살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다. 하루 쉬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아니더라. 그런데 장애아 부모가 전화가 와서 ‘뭐 이리 오래 아프냐. 선생님이 빨리 애를 봐주셔야 우리가 좀 쉬죠’라며 핀잔을 주더라. 세금 덕에 큰 부담 없이 활동보조인들의 도움을 받는 건데 마치 고용주인양 구는 모습에 신물이 났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인 3년차 표모(55)씨는 “예전에 맡은 장애아에 대한 업무는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 어머니가 빈번하게 아침 8시부터 ‘일이 생겨서 그러니 애 좀 봐 달라’고 부탁했다. 몇 번 거절했더니 복지관에 연락해 활동보조인 교체를 요구해서 잘린 적 있다. 우리도 엄연히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사람인데 마치 우리를 5분 대기조로 여기는 듯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활동보조인 4년차 박모(54세)씨는 “예전에 머리를 잡아당기고 때리려고 덤벼드는 뇌병변 장애아를 피하려다 몸끼리 부딪혔다. 아이의 몸에 약간 멍이 들었는데, 그걸 보고는 구타였다며 ‘폭력선생님’으로 낙인찍더라. 결국 복지관에 사표를 내게 하고 1년간 자격 정지를 당했다”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돕는 활동보조인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얻는 일도 다반사다.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한 장애인 활동보조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열악한 처우다. 올해 활동보조인들에게 주어지는 시간당 수가는 9240원. 이중 25%는 중개기관인 복지시설의 운영비로 가져가기 때문에 활동보조인들이 손에 쥐는 금액은 7000원 안팎. 2017년 최저임금인 6470원을 갓 넘기는 수치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해도 받는 월급은 160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김씨는 “주변 활동보조인을 보면 나처럼 재취업이 힘든 50대 여성들이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업무환경이나 강도를 생각하면 모자르다는 생각이 들 때다 많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을 갓 넘기는 시급을 받으면서 장애인 돌보랴 보호자 눈치보랴 힘든 활동보조인들은 부정수급에 대한 끝없는 감시를 받고 있다. 이따금 활동보조인들의 근무시간 조작 등의 부정 수급 얘기가 나오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얘기다. 그럼에도 사회보장 정보원의 모니터링 전화가 수시로 울리고, 문제가 생기면 2~3개월간의 활동을 증명해야 한다. 표씨는 “근무 시간을 장애인 보호자가 확인해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알력 관계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덕규 전국장애인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인에 대한 처우 개선과 더불어 엄연한 직업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인식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활동보조인들의 처우와 노동 환경을 보면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여실히 드러난다. ”고 지적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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