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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아인슈타인의 평화, 文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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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6 21:00:54 수정 : 2017-09-26 23: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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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는 경비원 없는 위험한 정글이다 / 무의미한 담론보다 구체적 방책에 초점을 문재인 대통령은 요즘 ‘평화’를 입에 달고 산다. 지난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선 32차례나 평화를 언급했다. 한반도 안보 정세를 깊이 우려한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전쟁을 겪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대통령인 나에게 평화는 삶의 소명이자 역사적 책무”라고 했다.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안정적으로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평화는 5000만 국민에게도 절박한 역사적 책무다. 문 대통령의 평화 담론이 공감을 낳는 이유다. 아마도 북한에 자극적으로 경고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자위권’을 내세운 북한 지도부도 평화적 해결이 낫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평화를 외친다고 해서 반드시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인류사가 그렇게 알려준다. 치명적 딜레마다.

평화 전도사는 예전에도 많았다. ‘상대성이론’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좋은 예다. 그 또한 평화를 입에 달고 살았다. 평화를 파괴하는 것에 대해선 분노했다. 1929년 “전쟁의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전쟁에 봉사하는 행위를 일체 거부할 것이며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설득하겠다”고 공개 발언을 할 정도였다. 그는 세계정부 수립을 제창하기도 했다. 정신분석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1932년 보낸 편지에선 이렇게 썼다. “전쟁이 사라지기를 진정 원하는 사람은 자국이 국제조직에 주권의 일부를 이양하는 데 전적으로 찬성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면 노벨물리학상만이 아니라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바람은 매몰차다. 아인슈타인은 히틀러 나치의 광기를 목도했고, 결국 경악했다. 히틀러의 호전성에 대해서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제사회의 둔감성에 대해서도. 1938년엔 히틀러에 대한 무력 대응을 촉구하는 공개 메시지까지 던졌다. “정의를 비웃고 경멸하는 세력(히틀러)이 작지만 위대한 문화를 지닌 나라들을 파괴하는 와중에 강대국이 가만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이승현 편집인
아인슈타인이 초지(初志)를 유지하는 대신 정반대로 국제적 응징을 호소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일차적으론 히틀러의 야욕을 꼽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원인도 있다. 모든 국가는 무정부주의 세계에 있다. 자기를 지켜줄 야간경비원이 존재하지 않는 위험한 정글이다. 저마다 생존을 위해 힘을 키울 수밖에 없고 그런 경쟁은 분쟁과 충돌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종종 국제사회의 그 어두운 속성을 간과한다. 아인슈타인도 그랬다.

문 대통령의 평화 담론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입장을 바꾸기 전 아인슈타인의 평화 담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분단국가의 군통수권자가 찬바람 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감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재삼재사 경계할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7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6·25 이후 최고의 위기”라고 한반도 상황을 규정했다. 동북아 지정학을 꿰뚫어 본 것이다. 하지만 후속 언행은 딴판이다. 얼마 전 CNN방송과 인터뷰에선 북핵에 대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북핵이 체제안전용이라면 왜 ‘최고의 위기’라고 했던 것일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과민반응을 해서 위기가 증폭된다는 뜻인가. 문 대통령은 전술핵 재배치론도 일축했다. 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고민도 하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제3차 세계대전에서 무슨 무기가 쓰일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서 무슨 무기가 쓰일지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돌멩이입니다.” 핵무기는 그토록 파괴적이다. 그것이 지금 북한에 있다. 그러니 싱겁고 무의미한 평화 담론은 설 자리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평화를 지킬 구체적·실용적 방책이다. 문재인정부가 진정 소명, 책무를 무겁게 느끼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한반도 평화를 어찌 지킬지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단잠을 이룬다.

이승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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