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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관문'…지상조업사입니다(上)

입력 : 2017-09-30 08:00:00 수정 : 2017-09-26 11: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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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 설렘이 가득한 비행기가 탑승구에서 분리되면 자력 출발이 가능한 지점까지 견인장비로 기체를 이동시킨다. 장비가 철수하면 조종사에게 ‘이제는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잠시 후, 활주로를 달린 비행기가 굉음과 함께 이륙하면 1회전을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지상조업사 이야기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창문 너머 활주로에서 손 흔드는 이들을 봤을 거다. 그들이 지상조업사다.

지상조업(地上操業)은 항공사업법에 따라 타인의 수요에 맞춘 항공기 급유, 항공화물 또는 수하물의 하역과 그 밖에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지상조업 사업을 말한다.

1989년 7월, 한진그룹 계열 국내 지상조업업체 한국공항에 입사해 28년째 근무 중인 조동현(54) 선임수감은 램프 마스터(Ramp Master) 역할을 맡고 있다. 램프는 우리가 흔히 아는 계류장이다. 6~7명이 1개조를 구성하며 통신, 화물 탑재 등 각자 업무가 나뉘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다른 이의 일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로 28년 경력의 한국공항 조동현(54·사진 오른쪽) 선임수감이 램프에서 동료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공항 제공.

이륙 1시간 전쯤부터 조업이 시작된다. 조원들의 건강상태와 장비 이상 유무를 점검한 뒤 △ 수하물 탑재를 위해 화물칸 문을 열고 △ 조업 장비(cargo loader)를 기체에 접현(接峴)한 뒤 △ 캐리어 등을 비롯한 수하물과 화물 등을 올리며 △ 모든 작업이 끝나면 화물칸 문을 닫고 재차 점검한다. 푸시백(push back·자력 출발 지점으로 기체 인도)까지 끝내면 모든 ‘출발편 조업’을 마치게 된다.

도착편 조업도 비슷하다. 비행기가 닿기 전 계류장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인원을 적정 장소에 배치한 뒤, 화물칸을 열어 각종 화물을 내리고 남은 짐이 있는지 재차 확인하는 순서다.

조 선임은 짐을 실을 때도 순서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유지가 있는 비행기는 최종 목적지로 가는 짐을 먼저 올리며,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서도 각 컨테이너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지시가 내려온다고 밝혔다. 일반 화물을 먼저 올린 뒤, 승객들의 위탁수하물을 싣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상조업사의 ‘손 인사’에는 목적지까지 편안히 잘 다녀오시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조 선임은 “이따금 비행기 안에서 저희에게 손 흔들어주시는 승객들도 계시다”며 “그럴 때면 기분이 무척 좋다”고 웃었다.

 
떠나는 비행기에 손 흔드는 지상조업사들. 한국공항 제공.


지상조업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날씨다. 활주로나 계류장 등에서 거의 보호막 없이 근무하다 보니,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햇볕이 뜨겁거나 눈이 쏟아져도 몸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다.

시멘트로 덮인 계류장은 여름철 지열이 심해 가만히 서 있으면 사우나나 마찬가지다. 겨울철에는 날개에 쌓인 눈을 쓸고 특수약품처리를 하다 보면 지연도 다반사에 우회 비행기가 몰리다 보니 정신이 없다고 조 선임은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일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관문’이 지상조업의 매력이어서다. 예컨대 과거 국내 박물관 전시를 위해 해외에서 들여온 유명 작품을 맞이하거나, 해외로 나가는 여러 수출품을 담당함으로써 조 선임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과거 우즈베키스탄의 나보이 공항 직원들에게 3주간 조업 노하우를 전수한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대형 비행기를 취급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는 조 선임의 방문이 큰 힘이 됐다. 외국의 유명 인사나 국가 원수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내릴 때면 집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한 치 오차도 없이 기체를 인도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잠시 망설이던 조 선임은 조심스레 공항 이용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어쩌면 부탁에 가까웠다.

“간혹 짐을 부치시고 비행기 탑승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짐을 다시 비행기에서 빼야 합니다. 주인 없는 짐은 절대로 싣고 갈 수 없거든요. 우스갯소리로 짐이 문을 열자마자 보이면 참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는 끝까지 다 내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승객 한 분이 시간을 지키지 않아 벌어지는 일인데, 이러면 다른 많은 분들에게도 피해가 가게 됩니다.”

승객 한 사람 때문에 출발이 늦어지고, 도착지 연계 항공편까지 지연되니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열흘에 걸친 추석 연휴, 어느 공항에서든지 이런 일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작업 중인 지상조업사. 한국공항 제공.


조 선임은 지상조업사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한 마디 남겼다. 그는 “공항에서 일한다는 건 무척 꼼꼼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더불어 자기가 맡은 일을 즐길 줄도 알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요건만 충족하신다면, 공항은 무척 재미난 곳이 될 것”이라며 “열정이 있다면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인천공항=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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