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지상조업사 이야기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창문 너머 활주로에서 손 흔드는 이들을 봤을 거다. 그들이 지상조업사다.
지상조업(地上操業)은 항공사업법에 따라 타인의 수요에 맞춘 항공기 급유, 항공화물 또는 수하물의 하역과 그 밖에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지상조업 사업을 말한다.
1989년 7월, 한진그룹 계열 국내 지상조업업체 한국공항에 입사해 28년째 근무 중인 조동현(54) 선임수감은 램프 마스터(Ramp Master) 역할을 맡고 있다. 램프는 우리가 흔히 아는 계류장이다. 6~7명이 1개조를 구성하며 통신, 화물 탑재 등 각자 업무가 나뉘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다른 이의 일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로 28년 경력의 한국공항 조동현(54·사진 오른쪽) 선임수감이 램프에서 동료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공항 제공. |
이륙 1시간 전쯤부터 조업이 시작된다. 조원들의 건강상태와 장비 이상 유무를 점검한 뒤 △ 수하물 탑재를 위해 화물칸 문을 열고 △ 조업 장비(cargo loader)를 기체에 접현(接峴)한 뒤 △ 캐리어 등을 비롯한 수하물과 화물 등을 올리며 △ 모든 작업이 끝나면 화물칸 문을 닫고 재차 점검한다. 푸시백(push back·자력 출발 지점으로 기체 인도)까지 끝내면 모든 ‘출발편 조업’을 마치게 된다.
도착편 조업도 비슷하다. 비행기가 닿기 전 계류장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인원을 적정 장소에 배치한 뒤, 화물칸을 열어 각종 화물을 내리고 남은 짐이 있는지 재차 확인하는 순서다.
조 선임은 짐을 실을 때도 순서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유지가 있는 비행기는 최종 목적지로 가는 짐을 먼저 올리며,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서도 각 컨테이너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지시가 내려온다고 밝혔다. 일반 화물을 먼저 올린 뒤, 승객들의 위탁수하물을 싣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상조업사의 ‘손 인사’에는 목적지까지 편안히 잘 다녀오시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조 선임은 “이따금 비행기 안에서 저희에게 손 흔들어주시는 승객들도 계시다”며 “그럴 때면 기분이 무척 좋다”고 웃었다.
떠나는 비행기에 손 흔드는 지상조업사들. 한국공항 제공. |
지상조업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날씨다. 활주로나 계류장 등에서 거의 보호막 없이 근무하다 보니,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햇볕이 뜨겁거나 눈이 쏟아져도 몸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다.
시멘트로 덮인 계류장은 여름철 지열이 심해 가만히 서 있으면 사우나나 마찬가지다. 겨울철에는 날개에 쌓인 눈을 쓸고 특수약품처리를 하다 보면 지연도 다반사에 우회 비행기가 몰리다 보니 정신이 없다고 조 선임은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일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관문’이 지상조업의 매력이어서다. 예컨대 과거 국내 박물관 전시를 위해 해외에서 들여온 유명 작품을 맞이하거나, 해외로 나가는 여러 수출품을 담당함으로써 조 선임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과거 우즈베키스탄의 나보이 공항 직원들에게 3주간 조업 노하우를 전수한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대형 비행기를 취급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는 조 선임의 방문이 큰 힘이 됐다. 외국의 유명 인사나 국가 원수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내릴 때면 집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한 치 오차도 없이 기체를 인도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잠시 망설이던 조 선임은 조심스레 공항 이용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어쩌면 부탁에 가까웠다.
“간혹 짐을 부치시고 비행기 탑승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짐을 다시 비행기에서 빼야 합니다. 주인 없는 짐은 절대로 싣고 갈 수 없거든요. 우스갯소리로 짐이 문을 열자마자 보이면 참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는 끝까지 다 내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승객 한 분이 시간을 지키지 않아 벌어지는 일인데, 이러면 다른 많은 분들에게도 피해가 가게 됩니다.”
승객 한 사람 때문에 출발이 늦어지고, 도착지 연계 항공편까지 지연되니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열흘에 걸친 추석 연휴, 어느 공항에서든지 이런 일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작업 중인 지상조업사. 한국공항 제공. |
조 선임은 지상조업사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한 마디 남겼다. 그는 “공항에서 일한다는 건 무척 꼼꼼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더불어 자기가 맡은 일을 즐길 줄도 알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요건만 충족하신다면, 공항은 무척 재미난 곳이 될 것”이라며 “열정이 있다면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인천공항=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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