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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한때는 목숨이었다. 쌀을 사는 것을 ‘쌀을 판다’고 했다. 쌀이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었기에 집안에 쌀이 떨어졌다는 말을 꺼내면 집안을 돌보아주는 조상들의 영혼이 화를 낸다고 믿어 쌀이 떨어져서 쌀을 사러 가야 할 상황에서도 쌀을 사러 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쌀이 남아서 팔러 간다는 표현을 쓰도록 했다는 얘기가 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살았던 우리의 서러움과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양식을 사러가면서 팔러 가는 척했던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쌀을 사러 가면서 왜 쌀을 팔러 간다고 하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기록은 없다.

쌀 인심이 후해졌다. ‘공기밥 1000원’이란 가격표가 붙어 있는 식당도 있지만 대부분의 식당에서 밥은 무한리필이다. 적당히 퍼 담은 밥을 그나마 남기는 손님이 상당수다. 어르신들은 여전히 밥심으로 산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은 밥보다 빵이고 고기다. 쌀 소비가 갈수록 줄고 있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하루 평균 169.6g이다. 하루 두 공기도 안 먹는다는 뜻이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9㎏으로 20년 전인 1996년(104.9㎏)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생산량은 소비량보다 훨씬 많아 처치 곤란이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420만t으로 적정 생산량 390만t을 크게 웃돈다. 20년 전 532만t에 비해 100만t 정도밖에 줄지 않았다.

작년 쌀값은 80㎏ 한 가마당 12만9711원으로 20년 전인 1996년 13만6713원보다도 낮다. 화폐가치로 따지면 쌀값은 반 토막이 됐다. 짜장면 값이 20년 전 2500원 정도에서 5000원 이상으로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농민들 입장에선 쌀값 올려달라고 아우성 치고도 남을 일이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쌀 정책은 한 마디로 고육지책이다. 쌀이 넘쳐나는데도 정부가 시세보다 비싼 값에 사주고 있으니 농민은 다른 작물을 쳐다보지도 않고 벼농사에만 매달린다. 과잉 생산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쌀 생산을 줄이고 영농을 다각화하는 농정개혁이야말로 시급한 과제인데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됐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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