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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공동체 이익 위해선 진보·보수 편가르기 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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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2 20:02:54 수정 : 2017-09-22 20: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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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천 울산대 총장 / 서울대 총장 지내고 울산대로 / 공직 경험·지혜 나눌 소중한 기회 / 대학·지역간 격차 줄이기 노력 시급 / 교부금 등 원초적 불균형부터 해소를 / 30년 강의 정리한 ‘…정치경제학’ 펴내 “보수와 진보를 진영논리에 의거해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요. 현대사회의 복합적 문제를 이념적 단순 모형으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서울대 총장을 지낸 뒤 울산대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연천(66) 총장을 지난 21일 만났다. 총장비서실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처음엔 미적댔다.

“정말 오랜만의 인터뷰입니다. 망설이다가 두 번째로 중앙일간 신문 인터뷰에 응했어요.” 선비풍의 온화한 품새를 지닌 오 총장은 가장 응축된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재정학분야 전문가로 최근 ‘국가재정의 정치경제학’을 출간한 오연천 울산대 총장. 그는 “우리 사회가 보수냐 진보냐를 논쟁하는 것보다는 국가의 부가가치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재문 기자

― 삶의 좌우명을 먼저 소개해 달라.

“저는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인간으로 살아 숨 쉬고 활동하는 존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겸허한 마음,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된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남을 이해하게 된다.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 삶은 바로 사랑과 지혜를 나누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마찬가지로 국민들도 국가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인간은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가 없으며 공동체를 이룬다. 공동체와 함께 나누며 삶의 질을 높이면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가치도 높일 수 있다.”

―당연한데도 새롭게 다가온다. 삶을 관조하는 듯한 이런 좌우명을 갖게 된 이유는.

“언제부턴가 생에 대한 기쁨을 갖게 되었다. 철들면서 그랬던가. ‘나’라는 생명체가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분명해진다. 존재하는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인가. 신이 선물을 주었다고 해석한다. 인간으로 세상에 나온 것에 대한 경이로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은 어떤 목표를 이루지 못한 데 대해 화를 내거나 좌절하곤 한다. 하지만 겸손하면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다.”

―가장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이 모인 서울대 총장을 지내고 울산대 총장으로 옮긴 배경은.

“울산에 온 것은 대학 동기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가졌던 공직의 경험은 공적 가치라고 본다. 어느 곳에 있든지 나의 경험을 나눌 수 있고 펼칠 수 있는 것은 좋은 기회다. 겪고 배운 경험과 지혜를 나눌 수 있다면 고마워해야 한다. 서울과 지방을 나누는 것 자체도 무의미하다.”

―서울과 지방 대학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학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많은 인재가 지방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사실상 국립대나 사립대의 사회적 역할이나 기능 차이가 크지 않다. 서울과 지방 간 차이를 줄이려면 원초적 불균형부터 해소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지원이 가능한 교부금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 유학 시절 느낀 점은.

“미국 청년들은 일찍부터 고교를 졸업하면 자립한다는 생각을 보편적으로 갖는다. 일단 집을 떠나 독자적인 생활 터전을 만든다. 독립심이 일찍 형성돼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간다는 생각을 갖는 경향이 강하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자식이 떠나면 부모는 서운할 텐데.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다. 동양은 수직적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관심권 아래 성장하는 데 비해 서구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독립해서 스스로 삶을 꾸려나간다.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재벌 2세를 소개할까? 미국인인 그의 아들은 기업 승계엔 관심 없었다.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부를 상속받지 않고 예술 분야에 주력한다고 한다. ‘경영권을 계승하지 않는 것도 나의 의지’라고 했다. ‘나는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게 그 친구의 생각이었다.”

―최근 국가재정과 관련된 의미 있는 책을 냈는데.

“‘국가재정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30여년 해온 강의를 정리했다. 총장으로 지내면서 소홀히 했던 부분을 정리했다. 재정의 원칙과 선택,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 세금, 복지, 지방자치, 공기업 등 매일 우리 생활과 부닥치는 문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국가재정은 가정의 살림살이와 똑같다. 자기 살림에만 관심 쏟을 게 아니라 나라살림에도 관심을 갖자. 특히 국회의원, 정당인, 언론인, 관료들은 더욱 재정을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 국민들이 선거에서 어느 후보가 자신의 기대와 근접한지, 공약대로 지키는 후보가 누구냐를 알려면 재정을 알아야 한다.”

―결국 투표로 나라살림이 결정된다는 의미인가.

“투표도 결국 재정을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 공동체의 목적과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이해하며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특히 복지 분야가 그렇다. 진보냐 보수냐를 나누는 건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부자증세라는 용어도 어색한 표현이다.”

―문재인정부의 능력은 어떤가.

“일본은 우정공사를 민영화하는 데 5년 걸렸다. 5년간 총리와 장관은 수백 차례 시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반대하는 국민들과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솔직담백하게 정치권과 국민을 상대로 가혹한 수준의 설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내심 갖고 설득하고 공감대를 만드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에 맞는 사례가 있는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낀 네덜란드의 경험을 보자. 국가 경영에서 포용, 관용의 대명사가 네덜란드다. 종교, 인종,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경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네덜란드는 창의적 활동을 대환영한다. 수출입 규모에서 세계 5위인 나라가 네덜란드다. 종교전쟁,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 부가가치 개발에 주력했다. 예컨대 기술 개발로 튤립을 만들어 세계 수출시장을 석권한 것도 이런 지혜의 산물이다. 종교전쟁 시절 프랑스에서 탄압 받은 (신교도) 위그노파들이 대거 네덜란드로 피신한 이유가 무엇인가. 창의성, 포용, 관용으로 국가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아직 개방성이 뚜렷하지 않고,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세계 최대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시장이 아랍계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다. 개방형 시스템으로 국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새 정부 들어 각 분야를 개혁해야 하는 중요한 분기점에 있다.

“국가 존립과 가치를 높이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럴 때 대통령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실천력이 중요하다. 증세 문제도 그렇다. 여야가 밤낮없이 토론해야 한다. 야당이 요구하는 것도 귀를 기울여야 솔루션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각종 시스템에 수술을 가할 기세인데.

“현재 우리나라 국정의 현주소나 제도적 시스템은 몇 십 년 동안 축적되어 온 것이다. 현 제도의 부분적 문제를 수술하기에 앞서 전체를 보고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시스템 자체를 불신하고 급속히 재단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체 속에서 부분을 봐야지 부분을 갖고 전체를 봐선 안 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유의해야 할 것은.

“제도의 본질은 법령과 예산이다. 구체적인 안을 만드는 것은 제도 속의 법령과 예산을 고려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제도적인 맥락에서 법령과 예산의 제약점을 극복하고 현실화하는 성숙된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권력과 제도권력의 차이를 인식하고 제도권력의 제약점을 고려하며 이를 풀어내는 것이 대통령이나 행정부가 일을 잘할 수 있는 길이다.”

―청년들이 갈 직장이 없어 맘고생이 심하다.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고민해서 풀어야 한다. 정부, 모든 기업, 가계, 개인이 노력해야 한다. 개인의 경우 취업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긴요하다. 자신의 타고난 역량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이를 계발하는 것이 교육이다. 한편으로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저 자신도 서울대 교수 임용 심사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그때마다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오연천은
△1951년 충남 공주 출생 △1970년 서울대 정치학과 △1975년 행정고시 합격(17회) △1982년 미국 뉴욕대 대학원 박사 △1983년 서울대 교수 △2000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2010 서울대 총장 △2014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2015년 3월 울산대 총장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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