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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앞 못본다고 인터넷 쇼핑 못 하나요"…장애인 차별 철폐·IT 강국 무색

입력 : 2017-09-23 14:00:00 수정 : 2017-09-22 1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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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엔 텍스트 파일 삽입 의무 / 차별금지법 10년 됐어도 안 지켜 / 생필품 구매 등 장벽 높은 장애인 / 대형 온라인 쇼핑몰 3곳에 손배소 / 온라인 안내견 역할 ‘스크린리더’ / 텍스트 파일 없어 먹통 너무 답답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다가옵니다. 매년 연휴를 앞두고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전쟁’이 벌어지죠. 저도 올해 설을 앞두고 인터넷 기차표 예매를 시도한 적이 있어요. 저처럼 앞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은 아무래도 작업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아니에요. 그런데 설 명절 예매 사이트는 한 사람당 딱 3분 동안만 이용할 수 있고 접속 횟수도 6회로 제한돼 있더군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고요.

솔직히 저희가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냥 종이로 된 점자책만 읽으면 되지 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보화’라는 세상의 흐름은 장애인에게도 똑같은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도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접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시대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인터넷을 쓰는지 궁금할 겁니다. ‘스크린리더’라고 들어보셨나요.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화면에 뜨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이죠. 
시민단체 ‘정보격차해소운동본부’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웹사이트 정보 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963명은 이날 국내 대형 온라인 쇼핑몰 3곳을 상대로 한 사람당 600만원씩 총 57억여원의 지급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보통 이 스크린리더에 의존해 제가 찾는 정보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클릭 하죠. 길 모르는 운전자들한테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듯, 온라인 공간의 저에게는 스크린리더가 안내견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랍니다.

제가 이번에 왜 온라인 쇼핑몰을 상대로 한 소송에 참여했냐고요. 얼마 전 몸이 아파 한동안 밖에 못 나갔습니다.

큰맘 먹고 온라인 쇼핑몰에 회원으로 가입했죠. 웹사이트에 접속해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려다 그만 포기하고 말았어요. 상품 정보를 들려줘야 할 스크린리더가 갑자기 벙어리가 됐기 때문이죠. 자판을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이 없고 답답한 나머지 가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습니다.

할 수 없이 비장애인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제품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텍스트 파일이 심어지지 않은 이미지 파일로만 등록돼 있어서 그래.”

텍스트와 이미지, 조금 복잡하네요.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웹사이트를 만들 때 모든 이미지 파일은 그것을 설명하는 텍스트 파일을 반드시 함께 심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스크린리더가 작동해 그 이미지가 대체 무엇인지 시각장애인에게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정부가 마련한 ‘한국형 웹콘텐츠 접근성 지침’이란 것도 있다고 하죠. 하지만 많은 웹사이트는 아직 이런 접근성 준수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저를 포함한 시각장애인들이 소송 때문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갔습니다. 소장을 제출하기 전 법원 청사 입구에서 기자회견도 했죠. 이병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님이 대표로 모두발언을 했습니다.

“우리 시각장애인들 중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너무 답답해 자판을 아예 두들겨 부순 분 참 많을 겁니다. 오죽하면 시각장애인 때문에 컴퓨터 자판 만들어 파는 분들이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현장에 있던 어느 비장애인은 농담으로 들었는지 웃음을 터뜨렸지만 저는 오히려 서글펐습니다.

시각장애인이란 이유로 인터넷 접근과 이용이 어려워 컴퓨터 자판까지 부수는 나라. 이게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는 21세기 정보기술(IT)강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란 말인가요.

생필품 구매나 서비스 예약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처럼 감염병이 창궐하면 저희는 병원이나 약품에 관한 정보를 어디서 구해야 하나요. 요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집에서 가까운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확인해두는 이가 많다고 하던데 저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습니다.

이 법이 ‘차별하면 안 되지’라는 선언과 권고에 그치지 않고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차별을 찾아내 시정하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한층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는 실효성 있는 장치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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