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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신문사 얘기다. 기자들이 허리춤에 ‘삐삐(비퍼)’를 차고 다니던 시절이다. 당시 데스크들은 낙종한 것 이상으로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했다. 기자들은 취재 도중이라도 삐삐에 부서 전화번호에다 ‘8282’까지 찍히면 황급히 공중전화기로 달려가곤 했다. 사건 기자들은 저녁에도 연락이 올지도 몰라 마음을 놓지 못했다. 샤워를 할 때도 삐삐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간 기억이 있다.

세상이 달라졌나 보다. 요즘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가 화두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얼마 전 근무 시간 외에 휴대전화 메신저 등을 활용한 업무지시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시도 그제 퇴근 후 카톡을 이용한 업무를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CJ 같은 대기업은 물론 JYP엔터테인먼트 같은 연예기획사도 동참했다. 고용노동부도 연말까지 노사의견을 수렴하고 업종별 실태를 파악해 종합적인 방안을 내놓는다고 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놓고 사규로 정하면 되는데 법까지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반면에 직장인 다수는 업무가 끝난 후에도 연락이 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휴대전화는 ‘족쇄’나 다름없다고 한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4%는 퇴근 후에도 업무지시와 자료 요청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초과근무 시간이 주당 11.3시간이나 된다는 통계는 카톡 업무지시가 퇴근 후 쉴 권리를 앗아가는 주범임을 보여준다.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제도 도입보다 관련 기술 적용이 중요하다고 한다. 폴크스바겐이 그 사례다. 이 회사는 업무 종료 30분 후에 업무용 스마트폰의 이메일 기능이 정지된다. 다음날 근무시간 시작 30분 전에 서버가 다시 작동된다고 한다. 참고가 될 만하다.

어찌 됐든 스마트폰 등장으로 일과 여가 경계가 무너진 근로자의 건강과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이런 움직임은 의미가 작지 않다. 세상의 부장들은 “퇴근 후 카톡 보내지 말라”는 직원 문자를 괘씸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디지털시대 인권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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