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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한·중수교 25년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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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9 23:28:53 수정 : 2017-09-19 23: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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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고작 미사일 1개 포대에 호들갑 / 양국관계 정치적 역학 외면한 채 / 경제 이익만 좇은 건 아닌지 성찰 / 이번 사태 ‘거품’ 걷어내는 기회로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실리외교’의 서막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은 바로 1992년 8월24일 한·중수교였다. 냉전시대의 거대 축이었던 중국이 한국과 수교한다는 사실 자체는 세계의 관심사였다. 역사적 의미만큼이나 협상 과정은 험난했다. 난항을 겪던 수교 협상은 1990년 1월 무역대표부가 설치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수차례 외무장관 회담을 가졌지만 북한 핵 및 한국전 참전에 대한 중국의 입장 표명 문제, 대만과의 단교 등이 걸림돌이 됐다. 결국 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입장을 고려해 대만과의 ‘단교’ 카드까지 받아들였다. 중국도 혈맹이라고 부르던 북한의 불만을 무릅쓰면서까지 수교에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그렇게 성사된 양국의 수교가 벌써 25년을 맞았다. 사정이 이 정도면 내심 그동안의 우호를 과시하기 위한 한바탕 축제도 기대할 법하다. 현실은 달랐다. 성대한 잔치는커녕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각 ‘반쪽짜리’로 열린 기념행사가 고작이었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개최한 기념행사에는 한반도 업무와 무관한 중국 인사가 손님으로 참석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양국의 축전 교환 소식조차 보도하지 않았다. 5년 전 한·중수교 20주년 행사가 양국 정부 공동으로 성대하게 열리고, 당시 시진핑 부주석이 참석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반도에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이 내려진 이후 드러난 한·중관계의 ‘민낯’이다.

한반도 안보 불안에 맞서 롯데가 대승적 차원에서 성주골프장을 주한미군에 사드 부지로 제공한 직후 중국은 치졸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치, 경제, 문화 분야는 물론 신성한 스포츠 분야까지 사드를 핑계로 보복을 자행했다. 수법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이다. 예전에는 전혀 문제 없었던 소방법, 시설법 등을 마구 들이대며 자국 내 롯데마트의 숨통을 조였다.

김기동 산업부장
중국을 믿고 기다리겠다던 롯데도 결국 중국 마트사업을 접기로 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합자법인도 매출 감소 등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돈줄을 쥔 중국 측이 협력업체에 납품대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공장 가동 중단과 재가동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산’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화장품, 제과, 여행 등 모든 업종이 무차별적인 보복에 노출돼있다. 이쯤 되면 중국의 막가파식 횡포에 양국의 25년 우정은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졌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보이는 작금의 행태는 80년대 중국식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연상케 한다.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문제는 그 이면에 숨어있는 위험성이다. 흑묘백묘론이 내건 실용주의는 뒤집어보면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미국·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과 북한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드 보복의 여파는 한국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롯데그룹 한 곳만 중국에서 철수해도 중국인의 일자리가 적게는 수만개에서 많게는 10만개가 사라진다. 하물며 중국에 투자한 국내 3만여개 기업이 다른 나라로 옮길 경우 중국 경제도 휘청댄다. ‘중국=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전 세계에 알린 것은 이번 일로 중국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다.

대국을 자처하는, 그것도 미국과 함께 G2로서 세계를 이끌어가겠다는 중국이 고작 1개 미사일 포대에 호들갑을 떠는 그 자체가 놀랍다. 사드 배치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한국도 미국도 아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온 한국이 안보를 포기할 리 없다.

우리도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단순한 애국심을 앞세워 반중감정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양국 관계가 정치역학적 측면은 외면한 채 경제적 이익만 좇는 기형적 형태로 성장해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자. 내친김에 이번 사태를 한·중관계에 교묘하게 포장돼있는 ‘거품’을 걷어내는 기회로 삼는 건 어떨까.

김기동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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