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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김동연 100일,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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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7 23:15:21 수정 : 2017-09-17 23: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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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패싱’의 진원지는 ‘불신’ / 정권 핵심 비토·관료들 뒷담화 등 / ‘자갈’ 걷어내고 혁신성장 살아야 / 경제 컨트롤타워로 제대로 설 듯 얼마 전 텃밭에 배추 모종을 심었다. 먼저 묵은 땅을 갈아엎었다. 땅속 깊이 뿌리내린 잡초는 거세고 질겼다. 올봄에 간 땅이건만 자갈은 여전히 수두룩했다. 두 평 남짓한 텃밭인데 한나절 만에 어깨가 결렸다.

취임 100일을 맞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새 밭을 매느라 연일 강행군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없고, 정권 창출의 공도 없는 그의 발탁은 신선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고를 졸업한 뒤 주경야독한 ‘흙수저’ 스토리는 울림이 있었다.

정통 관료인 그는 개혁 성향의 학자 출신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는 결이 달랐다. 그의 인사에서 ‘몽돌(개혁대통령)과 받침돌(안정총리)’ 논리로 고건 전 국무총리를 기용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첫 조각 구상이 떠올랐다. 그는 밤새 직접 쓴 취임사에서 “우리가 언제 한번 실직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꼬집었다. 서민의 삶과는 점점 멀어지고 ‘1%’에 스멀스멀 다가가는 후배 관료들의 아픈 곳을 후벼팠다.

이천종 경제부 차장
정해진 일처리는 대체로 매끄러웠다. 취임하자마자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시작으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수립, 내년도 세제개편안과 예산안 등을 시간표대로 착착 처리했다. 소통의 스타일도 바꿨다. 밀실 논의라는 지적을 받은 ‘서별관회의’는 없애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공개간담회를 수시로 열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 부총리를 격려했고, 정권 실세인 장 실장과 김 위원장도 “경제 컨트롤타워는 부총리”라며 치켜세우고 있다.

눈병이 날 만큼 숨가쁘게 밭을 일군 그의 부지런함은 화려한 빛이건만 역설적으로 ‘김동연 패싱(Passing·건너뛰기)’이라는 큰 그림자를 낳았다. 경제정책 수장으로서 그의 존재감이 보잘것없다는 김동연 패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불거졌다.

첫째는 핵심 정책 추진과정에서 여권과 실세들에 치인다는 것이다. 초고소득자·초대기업 ‘타깃 증세’가 대표적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증세 의사결정과정에서 신중론을 펴던 김 부총리는 설 곳을 잃었다. 최근 부동산 보유세 인상을 두고는 당·정 간 엇박자를 빚고 있다. 청와대가 만약 다시 당의 손을 들어준다면 균형을 잃은 시소에 앉은 김 부총리의 말에 누구도 더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리라. 외통수에 몰린 셈이다.

둘째는 김 부총리가 외치는 혁신성장의 메아리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수요 측면의 성장을 추구하는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실험적 시도라는 점을 감안해 이를 보완할 공급 측면의 성장전략으로 혁신성장을 제시한 것이다. 김 부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 대통령에게도 혁신성장의 중요성을 전하고 문 대통령도 힘을 실어준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성장 담론은 좀처럼 주목을 못 받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철학인 J노믹스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한쪽이라도 삐걱거리면 제대로 달릴 수 없는 구조다.

미세하지만 위험 징후도 나타났다. 11조원 규모의 추경이 본격적으로 투입됐음에도 청년실업률이 8월 기준으로 1999년 이후 최대치(9.4%)를 기록했다.

혁신성장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맞닿아 있다. 외환위기로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던 1999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김대중정부의 벤처기업 창업 붐이었다.

김동연 패싱이 사라지고, 그가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혁신성장이 탄력을 받는다. 아니다. 혁신성장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김동연 패싱이 사라진다. 동전의 양면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추락하는 상황에서 혁신성장이 살아야 소득주도성장도 날개를 달 수 있다는 점이다.

김동연 패싱의 진원은 ‘불신’으로 선명하다. 그렇지만 해결책은 녹록지 않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바 없는 김 부총리에 대한 정권 핵심의 비토, 보수정권에 부역한 ‘적폐’ 관료들에 대한 여권 전반의 분노, 소득주도성장이 말이 되느냐고 뒷담화를 해대는 관료들의 현 정권에 대한 비아냥. 이 모든 자갈을 걷어내야 김동연 패싱이 소멸된다. 보수정권 9년의 묵은 밭을 갈아엎는 일이 간단치 않다.

이천종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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