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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에 주스 한 잔 권하는
여행사 대표의 따뜻한 안내문
행복한 사회 만드는 데에는
백 마디 말보다 실천이 중요
아내가 카톡 사진을 보내왔다. 여행사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건물 벽에 붙은 안내문을 찍은 것이었다. 택배 기사를 배려하는 따뜻한 글이 실려 있었다.

‘택배 기사님, 저희 엘리베이터가 좀 많이 느립니다. 기다리다 지쳐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시기도 하고…. 그럴 때면 많이 답답하시죠? 올라가시기 전에 미리 카페에서 과일주스 한 잔 주문하시고 올라가세요. 시원한 과일주스 한 잔 드시고 조금이나마 파이팅~ 하는 날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산은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배연국 논설실장
“살짝 감동했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생겼어요.” 아내의 가슴 뭉클한 소감이었다. 안내문을 읽은 누군들 왜 그러지 않겠는가. 글귀가 붙은 곳은 서울 용산의 여행박사 건물이었다. 1층 카페 옆 벽면과 엘리베이터 안에 한 장씩 부착되어 있었다. ‘냉장고 음료도 괜찮아요’라는 꼬리표의 글귀에는 섬세한 마음이 배어났다.

글을 붙인 사람은 황주영 여행박사 대표였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반듯한 생각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지난달엔 화재현장에서 헌신하는 소방관들을 위해 무료여행을 시작했다. 직원들의 복지혜택도 여느 회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직원들이 격주로 금요일을 쉬는 주 4일제 근무를 실험 중이다. 출퇴근 왕복시간이 3시간을 넘으면 회사에서 오피스텔을 공짜로 제공한다. 직원들이 즐거워야 회사의 분위기가 밝고, 고객들에게도 행복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게 황 대표의 철학이라고 한다. 세상의 그 어떤 철학보다 멋진 삶의 철학이 아닌가.

대체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전화를 걸자 수화기 저쪽에서 넉넉한 음성이 들려왔다. “옛날엔 집에 사람이 찾아오면 시원한 물이라도 드리지 않았던가요.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물 한 잔 대접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직원들의 전언으로는 처음에 어리둥절해하던 택배 기사들이 이젠 스스럼없이 음료를 시켜먹는다고 한다. 물론 음료 비용은 황 대표가 자비로 모두 부담한다.

우리는 주문만 하면 안방으로 물건이 척척 배달되는 택배 천국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편리함의 이면에는 택배 기사들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다. 택배 기사들은 점심시간도 없이 주 70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린다. 최악의 환경에서 물건 하나를 배달하고 손에 쥐는 돈은 고작 700원 정도라고 한다. 이들의 처우 개선에 뒤늦게 정부가 나섰지만 그것으로 열악한 환경이 나아질 수 있을까. 진정 세상을 바꾸는 것은 수많은 제도나 대책이 아니다. 수백 가지 비정규직 대책보다 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우리 삶을 한 걸음 전진시킬 수 있다.

얼마 전 화장실에서 밥을 해먹는 어느 아파트 경비원의 실상을 접한 적이 있다. 경비실이 너무 비좁아 밤에는 화장실까지 판자를 깔아 변기 쪽에 머리를 두고 잔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경비원은 다른 곳으로 쫓겨난 뒤 결국 직장까지 잃었다. 서울 강남의 13억원짜리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하라 사막보다 더 황량한 인심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목도한다.

비단 강남 아파트뿐이겠는가. 호주 콴타스항공의 최고 경영자 제프 딕슨은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고 일갈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주변의 현실이 그렇다. 그 슬픈 역설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고선 대한민국은 결코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나라의 행복 순위가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푸념하지 말자. 사람들이 예의가 없고 불친절하다고 한탄하지 말자.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가꾸는 것은 백 마디 비판보다는 황 대표와 같은 작은 실천이다.

제프 딕슨의 역설은 적어도 여행박사의 세상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8층의 여행사 건물보다 더 높은 인격을 보았으니까.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레시피에는 거창한 깃발이나 주장이 필요치 않다. 누군가 내 옆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 친절만 있으면 된다. 덤으로 살짝 미소를 건네 보라. 그러면 대한민국의 행복 온도가 1도 상승하지 않겠는가.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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