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풍경화 같은 고향 정취… 수많은 사연, 긴 여운

입력 : 2017-09-14 20:52:40 수정 : 2017-09-14 20:52: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이시영 시인 새 시집 ‘하동’ 펴내 이시영(68) 시인이 새 시집 ‘하동’(창비)을 펴냈다. 고향의 정취가 물씬 담긴 시편들이 짧고 긴 시들에 고루 담겼다. 시집을 통독하고 나면 많은 이들의 숨은 사연을 읽고 난 듯한 소회도 생긴다. 시란 긴 여운을 남기는 짧은 글이란 편견을 북돋우기도 하고 깨기도 하는 이율배반적인 시집이다. 짧은 시는 매우 짧고, 이게 시인가 싶은 긴 이야기는 산문으로 흐른다. 일단 시집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내 고향 구례군 산동면은 산수유가 아름다운 곳. 1949년 3월, 전주농림 출신 나의 매형 이상직 서기(21세)는 젊은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고구마가 담긴 밤참 도시락을 들고 산동금융조합 숙직을 서러 갔다. 남원 쪽 뱀사골에 은거 중인 빨치산이 금융조합을 습격한 것은 정확히 밤 11시 48분. 금고 열쇠를 빼앗긴 이상직 서기는 이튿날 오전 조합 마당에서 빨치산 토벌대에 의해 즉결처분되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아내가 가마니에 둘둘 말린 시신을 확인한 것은 다음다음 날 저녁 어스름. 그때도 산수유는 노랗게 망울을 터뜨리며 산천을 환하게 물들였다.”(‘산동 애가’)

태어나고 자란 지리산 자락 대지와 사람을 시로 길어 올린 이시영 시인. 그는 “이 시집을 끝으로 다시는 관습적으로 ‘비슷한’ 시집을 내지 않겠다”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조성이 쇠진되었다고 느끼면 깨끗이 시 쓰기를 포기하겠다”고 ‘시인의 말’에 밝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매년 봄이 오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꽃이 구례 산동면 산수유다. 노란 등불이 환하게 매달린 듯한 이 마을에 무심코 봄맞이하러 오고 갔지만 이리 슬픈 사연이 있다는 사실은 이 시를 보고서야 알았다. 저 ‘산동 애가’는 이 지역에 구전하는 슬픈 노래로도 전해지는데 사실을 신문 기사처럼 적시했을 뿐인데도 독후의 여운은 깊고 길다.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에서 자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한 이시영 시인의 뼛속에는 깊이 이곳 대지와 산의 정서가 박혀 있다. 그는 이제 그 언저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귀래사라는 절이 어디 있더라? 하여간 이 지상 어딘가에 있긴 있겠지. 이제 그만 그곳에 닿고 싶다. 가서 나무를 해도 좋겠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고 싸리비로 절 마당이나 쓸라고 하면 그 또한 좋겠지. 늙으신 보살이 차려준 공양을 정성껏 비운 뒤 뒷산 남새밭에 가서 하루 종일 잡풀들과 일하리라. 가끔 일어서서 허리를 곧추세워 독수리눈으로 하늘을 보리라. 청청히 텅 빈 하늘, 그리고 목화 송이처럼 흐르는 구름들. 저녁을 마치면 골방에 틀어박혀 잡서를 읽으리라. 그리고 세상과 등을 지고 나와 대면하리라.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겠지만 그 또한 잠깐의 인연. 훨훨 털고 텅 빈 벽에 바짝 붙어 단잠을 자다 소변을 눈 뒤 절 뒤꼍 해우소 근처에서 오래 서성이리라. 텅 텅 울리는 새벽 종소리가 아픈 무릎에 스밀 때까지.”(‘귀래사를 그리며’)

이처럼 긴 산문시만 있는 게 아니다. “흰옷은 정결하다// 마지막 조선의 할머니가// 외로 앉아서 파릇한 봄 냉이를 판다”처럼 한 행이 한 연이고 그 세 연이 한 시를 구성하는 ‘구례 장에서’ 같은 시도 있고, “논일 밭일 마치고/ 동구 밖 들어서는 소가 내뿜는 콧김/ 그리고 저녁 어스름”(‘어릴 적’) 같은 짧은 풍경화도 있다. “형의 어깨 뒤에 기대어 저무는 아우 능선의 모습은 아름답다/ 어느 저녁이 와서 저들의 아슬한 평화를 깰 것인가” 같은, 역시 짧은 시 계열의 ‘능선’은 이시영의 단시를 파악하기에 걸맞은 상징적인 시편이다. 지리산의 첩첩 능선들, 거기에 스며든 수많은 현대사의 사연들, 그리고 아름다움. 그것들은 언제까지 그 평화를 유지할 건가. 시인은 문명화되고 파편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미래에도 그 정경이 유지되리란 희망을 품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단시이지만 그 짧은 행간에 많은 사연이 깃들고, 나머지 여백은 독자들이 충분히 다양하게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형식이다.

남의 자식들까지 9남매를 공들여 키우고 추석 맞아 내려와 곤히 잠든 자식들 다리 사이를 조심조심 건너다 향년 91세로 쓰러진 ‘학재 당숙모’,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들녘과 부엌을 누비다 가출한 육촌 동생댁과 전주시 우아동 살 때 이웃 전주여고생 ‘시자 누나’ 같은 이들이 이번 시집에는 그립게 호명된다. 시인은 “내가 호명해 주지 않으면 그냥 묻혀 버릴 고귀한 품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서 “지리산 자락에 살았던 유년시절이 뼛속 깊이 각인돼 있는 나로서는 어느 날 문득 솟구쳐 오르는 것들을 받아 적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돌아가고 싶은 ‘하동’은 이렇게 흐른다.

“하동쯤이면 딱 좋을 것 같아. (…) 하여간 그쯤이면 되겠네. 섬진강이 흐르다가 바다를 만나기 전 숨을 고르는 곳. 수량이 많은 철에는 제첩도 많이 잡히고 가녘에 반짝이던 은빛 모래 사구들. (…) 그래, 코앞의 바다 앞에서 솔바람 소리도 듣고 복사꽃 매화꽃도 싣고 이제 죽으러 가는 일만 남은 물의 고요 숙연한 흐름. 하동으로 갈 거야. 죽은 어머니 손목을 꼬옥 붙잡고 천천히, 되도록 천천히. 대숲에서 후다닥 날아오른 참새들이 두 눈 글썽이며 내려앉는 작은 마당으로.”(‘하동’)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