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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조선시대 뒷골목 ‘피맛길’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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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4 20:54:26 수정 : 2017-09-14 20: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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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에 가면 ‘피맛길’(사진) 또는 ‘피맛골’이라 불리는 거리가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종로 방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이 길을 청진동 해장국과 빈대떡을 먹으며 술 한잔 기울이던 추억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피맛길의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는 경복궁과 그 앞(지금의 세종로)으로 쭉 뻗어 있던 관청들이 있어 벼슬아치들이 많이 행차하던 곳이다. “물렀거라~ 길을 비켜라~” 그럴 때면 어김없이, 평민들은 말을 탄 고관들을 위해 길을 터주고 엎드려 예를 표해야 했다. 이를 피하려 평민들은 대로 양쪽의 좁은 뒷골목으로 다니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말을 피하는 피마(避馬)길이 되었고, 평민들이 벼슬아치의 갑질을 피해 잠시 쉬어가고 요기도 할 수 있는 주점과 국밥집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당대 대표적인 시장거리가 되었다.

이 일대는 한양으로 천도할 때부터 시장으로 설계되었는데, 태종 12년(1412)부터 3년간 약 800여칸의 시전행랑이 줄지어 건설되었고,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증축되어 전체 2000여칸에 달했다고 한다. 생선을 팔던 ‘어물전’, 종이를 팔던 ‘지전’ 그 밖에 모시, 명주, 비단 등 다양한 물품을 취급하는 상점이 있었고, 일부는 그 물품을 국가에 공급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이 지역에는 조선시대 검찰이었던 ‘의금부’와 현재 주민센터격인 ‘한성부중부관아’ 등의 여러 관아와 중인들의 집들이 있었다.

2004년에는 이 일대에 대한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비록 예전 해장국집이 있던 정겨운 골목길은 없어졌지만, 이를 계기로 조선시대 땅속에 묻혀 있던 피맛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빌딩 숲 아래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공사에 앞선 발굴조사에서 시전행랑의 초석과 기단, 구들장 등이 수두룩하게 확인되었다. 그것 역시 15~19세기까지 조선의 역사를 대변하듯 역사를 품고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외에도 우물, 수로 등이 확인되고 각종 자기와 기와 등을 비롯하여 총통과 칼, 검과 같은 여러 가지 무기도 쏟아져 나왔다.

지금 피맛길에 가보면 이런 조선시대 유적을 만날 수 있다. 비록 그 자리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지만, 옛 피맛길처럼 주점 대신 맛집 골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지하에서 확인된 유적들도 거리 곳곳에 전시해 두었다. 마치 피맛길에 오면 조선시대에서 1970년대로, 청진동 해장국 골목에서 현대로 타임슬립을 하는 것만 같다. 과거와 현재의 아름다운 공존,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건설 시행자와 고고학자들, 관련 행정기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요즘, 피맛길에 가서 맛있는 식사도 즐기고 조선시대 옛 거리를 상상하며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

최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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