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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로 변호사의 영화 속 법률] ‘살인자의 기억법’ 심신상실

입력 : 2017-09-14 20:53:21 수정 : 2017-09-14 20: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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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변별 능력이 없는 상태/단순 기억상실은 해당 안 돼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한 붓으로 기록한 것이 총명하다는 머리의 기억력보다 낫다’는 의미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이다. 학교 수업이나 회의에서 필기를 하는 것은 ‘둔필승총’ 의미의 실천이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딸을 지키기 위해 지워지는 기억을 붙잡으려고 녹음, 기록하는 연쇄살인범 아버지의 노력이 처절하다.

작품 속에서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가 딸 은희(설현)를 또 다른 연쇄살인범 태주(김남길)로부터 지키려고 사라지는 기억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기억하지 못한 상황에서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 심신상실에 해당하여 처벌하지 못하는지를 알아본다.

형법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심신상실상태에서의 범죄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심신장애란 정신기능의 장애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병, 정신병질, 의식장애, 정신박약 등을 의미한다. 심신장애 여부는 정신장애의 내용 및 그 정도 등에 관하여 정신과의사의 감정을 거쳐서 그 감정 결과를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아 법원에서 규범적으로 판단한다.

사물을 변별할 능력은 적법과 불법을 구별할 수 있는 통찰능력으로서 지적능력을 의미한다. 기억능력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란 불법의 통찰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지배할 수 있는 조종능력으로서 의지적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면, 정신분열증에 따른 망상의 지배로 말미암아 도끼로 상해를 가한 경우, 간질병이 심화되면서 편집성 정신병이 악화되어 망상에 빠져 살인한 경우 등은 심신상실상태로 보아 무죄를 선고한다.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이나 소아기호증과 같은 질환이 있다는 사정은 원칙적으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그 증상이 매우 심각하거나 다른 심신장애 사유와 경합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심신장애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

작품 속에서 병수는 가끔 기억을 잃기는 하지만 온전한 상태에서 살인을 하고 사체를 대나무 숲에 묻었다. 이는 살인죄와 사체유기죄로 처벌된다. 병수가 망상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다면 심신상실로 인정되어 처벌을 면할 수는 있으나 치료감호에 처해질 수 있다. 살인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기억한다. 머리의 기억 속에 세상을 가두고, 자기 자신도 기억된 머릿속에 가둔다. 그러나 그 많은 기억은 편견과 감정에 왜곡되어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어 간다.

이조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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