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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은둔의 시인 김삿갓처럼… 30년 감춰졌던 붉은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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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5 10:00:00 수정 : 2017-09-14 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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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평생을 방랑했던 김삿갓, 적벽 절경에 푹 빠져 생의 마지막까지 화순서 맞아/1980년대 수몰지구로 ‘금단의 땅’이었다가 2013년 일반에 공개… 사전 예약해야만 만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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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있는 유명 장소에서 이름을 따온 국내 여행지에 대해선 ‘뻔한 곳 아닌가’란 선입견을 갖게 된다. 이름 하나로 단정되다 보니 여행지에 대해 많이 알려고 하지 않고 그만큼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이름이 적벽이다. 우리나라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중국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한 번은 들어본 곳이다. 산을 깎은 듯한 높은 벽이 서 있는 풍경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이 정도만 알면 전국 이곳저곳에 있는 다양한 기암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게 된다. 오히려 이런 작은 기대감이 나을 수도 있다. 반전의 묘미를 즐기려면 말이다.

마음먹고 떠난다고 해서 아무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과거 지역민들에겐 나들이, 물놀이 장소였지만, 댐이 건설된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금단의 땅이 됐다. 그러다 2013년부터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정해진 날에만 들어갈 수 있는 여전히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외부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곳은 바로 전남 화순의 붉은 벽 ‘적벽’이다. 마치 이곳에서 숨을 거둔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자신의 존재를 알리길 꺼리는 것이 똑 닮았다. 출중한 풍광이나 능력을 품고 있으니 아무리 자신을 감추려 애를 써도 숨길 수 없는 법까지 말이다. ‘낭중지추’란 말이 적격이다.

적벽이란 말은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으로 유배를 온 최산두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실학자 홍대용과 정약용 등 시인 묵객들은 이곳을 찾아 시를 한 편씩 남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적벽과 관련 깊은 인물은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이다. 경기 양주에서 태어나 강원도 영월에서 큰 김병연은 가족사를 전혀 모른 채 스무 살 무렵 할아버지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를 규탄하는 글을 지어 장원급제했다. 이후 그 사실을 알고 하늘을 보기 부끄럽다며 삿갓을 쓴 채 죄인처럼 방랑길에 올랐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그는 화순을 세 번이나 찾았고, 숨을 거둔 곳도 이곳이다.
물염정 앞에 있는 김삿갓과 관련한 석상과 시비.
그는 이곳에서 일생을 담담하게 회고한 ‘난고평생시’로 알려진 ‘회향자탄’ 등을 남겼다. 적벽과 관련해선 적벽을 유람하는데 나그네는 있는데 술이 없음을 탄식한 ‘장유적벽탄유객무주(將遊赤壁歎有客無酒)’ 등의 시가 대표적이다.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비루한 처지의 김삿갓이 이런 비경을 보며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화순적벽은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항리 일대 7㎞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을 일컫는다. 이 중 대표적인 적벽이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이다. 이 중 최고 절경으로는 노루목적벽을 꼽는다.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적벽투어와 상관없이 아무때나 만날 수 있는데, 노루목적벽과 그 앞의 보산적벽은 화순군의 적벽투어(http://tour.hwasun.go.kr)를 통해서만 매주 수·토·일요일 볼 수 있다.
 
전남 화순 적벽 중 최고 절경은 노루목적벽이다. 옹성산 서쪽 사면을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댐 건설 후 수면부터 적벽 높이가 약 65m 정도다. 물에 잠긴 부분까지 합치면 100m에 이른다. 망향정과 망미정이 있는 보산적벽에서 노루목적벽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댐 건설로 호수가 된 동복호의 거북섬.
화순적벽 초소에서 자물쇠로 잠긴 문을 열어줘야 입장이 가능하다. 버스를 타고 가다 댐 건설로 호수가 된 동복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거북섬이 먼저 눈에 띈다. 긴 목에 등갑을 지닌 거북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적벽 전에 마주친 풍경을 보며 적벽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진다. 동복호의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휘어진 길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전망대에 이른다. 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돼 고향을 잃은 수몰민을 위한 망향정이 서 있는 보산적벽과 그 뒤편으로 우뚝 솟은 노루목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루목적벽은 옹성산의 서쪽 사면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댐 건설 후 수면부터 적벽 높이가 약 65m 정도다. 물에 잠긴 부분까지 합치면 100m에 이른다. 단순히 높다란 노루목적벽만 있었다면 허했을 텐데, 보산적벽과 어우러진 풍광이 전망대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돼 고향을 잃은 수몰민을 위한 망향정이 서 있는 보산적벽과 그 뒤편으로 우뚝 솟은 노루목절벽.
보산적벽의 망향정.
망향정이 있는 보산적벽으로 가면 노루목적벽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망향정에서 봐도 되고, 망향정에서 아래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이르는 망미정에서 봐도 좋다.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이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무릎 꿇었다는 소식에 분개해 은둔생활을 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수몰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곳에선 적벽에 새겨진 빨간 글자 ‘적벽동천’이 흐릿하게 보인다.
물염적벽.
물염적벽에 있는 정자 물염정.
창랑적벽은 다른 적벽보다 길고 강이 휘돌아 가는 풍광을 지녔다.
이곳에서 10여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물염적벽은 정자 물염정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김삿갓과 관련한 석상과 시비가 물염정 입구에 조성돼 있다. 물염적벽에서 나와 물염교를 지나 굽은 길을 지나면 만나는 긴 적벽이 창랑적벽이다. 다른 적벽보다 길고 강이 휘돌아 가는 풍광을 지녀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화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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