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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욜로’와 ‘스튜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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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1 20:54:16 수정 : 2017-09-11 23: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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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YOLO: 한 번뿐인 인생 마음껏 즐기라는 뜻의 신조어) 욜로 하다 골로 간다’더니 이제는 아예 멍청(stupid)하단다. 한창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욜로’ 열풍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스튜핏’에 대한 얘기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모토를 상기시키며 한국에 상륙한 욜로 바람은 우리 사회에 ‘진정 삶을 대하는 태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앞만 보고 내달려 온 사람들에게 욜로는 주변을 환기할 여유와 ‘느려도 괜찮다’는 위안을 선사했다. 막연한 미래보다 가까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는 교훈을 준 것은 덤이다.

여행, 식도락, 패션 등 관련 업계도 함께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욜로 마케팅’이 이곳저곳에 등장하면서 부작용도 함께 드러났다. 이제 욜로는 소비지향적이라는 ‘한국식 욜로’라는 비아냥을 듣다 못해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는 대명사로 통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너 그렇게 막 쓰다가 빈털터리 되면 어쩔래’ 하는 협박이자 경고다. 

김민순 사회부 기자
이런 가운데 ‘스튜핏’이 등장했다. 팟캐스트의 한 코너로 시작했다 텔레비전에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나온 이 단어는 진행자가 신청자의 영수증을 살펴보고 비합리적인 소비 습관이 발견되면 “스튜핏!”이라고 외치는 것에서 비롯됐다. 가령 다이어트 한약을 구입한 다음 날 친구와 족발을 먹는 것은 ‘모순 스튜핏’, 12만원짜리 선풍기를 산 뒤에 에어컨 청소를 따로 한 것은 ‘슈퍼 울트라 스튜핏’이라는 식이다.

해석은 코믹하지만 메시지는 준엄하다. 순간의 기분에 휩쓸린 무방비한 소비, 수입을 넘어서는 분수 넘치는 소비는 곧 인생을 망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그를 두고 ‘욜로 대항마’라고 부른 지 오래다. 친구를 만나면 돈을 쓰게 되니 차라리 만나지 않는다는 ‘야박한’ 고백에도 인기는 연일 치솟고 있다.

그러나 스튜핏 인기의 이면에는 그토록 비난해 마지않았던 욜로가 추구하는 바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2030세대 남녀 830명을 대상으로 욜로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84.1%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 대부분은 그 이유로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아서(60.7%)’를 꼽았다. 결국 순간의 즐거움에 치중하는 욜로의 지향과 미래를 위해 현재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는 스튜핏의 철학은 ‘후회 없는 미래’로 귀결된다.

약 63만5000명의 청년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노동을 하는 현실을 상기하면 욜로와 스튜핏 열풍은 ‘쓰거나 아예 안 쓰는’ 양자택일에 놓인 청년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어차피 ‘티끌’ 수준인 돈을 모으느니 적은 금액이라도 내 맘대로 써보겠다는 쪽과 이다음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긴축으로 미리 대비하겠다는 것 사이에 과연 어떤 게 맞는 길인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땀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고, ‘열정페이’마저도 진부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소비만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유일한 방법인 이 나라에서 청년들이 욜로와 스튜핏을 오가는 이유는 이 때문일까.

김민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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