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는 인문학 관련 대중 서적이 넘쳐나고 또 읽힌다. 대중 대상의 인문학 관련 강좌도 넘쳐나고 수요도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각종 개발 사업을 할 때 개발 지역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인문학에 대한 갈구는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정작 대학의 인문학 교육과 연구는 이런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 수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고도의 학문적 훈련을 받은 소수의 인문학 전공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논문과 학술저서를 쓰는 데 매진할 뿐,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타 전공자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서 나누는 데 인색하다.
귀를 기울여줄 사람은 시장에 있는데 시장은 시끄럽고 격에도 맞지 않으니, 고요한 그래서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면서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깊은 산속에 틀어박힌 셈이다. 그러면서 그 산에 자신의 말을 들으러 사람들이 오르지 않는 것을 탓한다. 시장 속의 사람들과 자신과 자신의 학문이 어떻게 시장 속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할 생각은 안 하고 시장 속의 삶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첩첩산중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저 산속에 들어간 인문학과 인문학 전공자들이 미덥지 않을 수밖에 없다.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인문학 전공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대학 강단과 연구실뿐이 아니라 대중과 책을 같이 읽는 자리, 대중과 역사의 현재성을 같이 논하는 자리, 철학적 고민이 어떻게 실제 삶에서의 고민과 밀접히 연결되는지를 대중과 이야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소리다.
인문학 관련 연구소를 10년간 집중 지원해 인문학 진흥을 꾀한 인문한국(HK)사업이 2007년에 선정된 연구소부터 종료되고 있다. 그런데 인문학 전공자로서 HK사업의 성과를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착잡하다. 시중에 인문학 관련 수요는 넘쳐나고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지원을 받아 엄청난 양적·질적 연구 성과를 냈는데 왜 한국 대학에서의 인문학은 존재가치가 의문시되는 위기국면으로 점점 더 빠져들고 있을까.
단군 이래 최대의 인문학 진흥사업이라는 HK사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대학에서의 인문학 위기를 바라보며, 인문학 교육·연구에 있어서의 반시장적 순수주의가 인문학과 시장을 유리되게 만들고 이것이 다시 인문학의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목격한다.
그래서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감히 말한다. 산에서 내려오라고. 고독은 버리고 왁자지껄한 시장으로 돌아오라고. 그래야 인문학자라고.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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