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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남북 미술사 이어주는 ‘기산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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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07 21:08:26 수정 : 2017-09-07 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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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기머리를 한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활과 갈고리가 달린 막대기를 들고 새를 잡는 모습을 그린 풍속도가 있다. 종이에 먹으로만 그린 그림에는 기산(箕山)이라는 백문방인이 찍혀 있고, ‘아희덜이새샨양’(사진)이라고 한글 제목을 써놓았다.

‘기산’은 1895년 한역본으로 발간된 기독교 문학소설 ‘텬로력뎡’(천로역정·天路歷程)의 삽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화가 김준근(金俊根)의 호다. 그는 188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 원산, 부산, 인천 등에서 활동하며 조선 방문을 기념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풍속화를 대량으로 제작하여 판매하였다. 조선말 서민들의 생활상과 풍습을 그린 기산풍속도는 국내에 있는 200여 점과 독일 함부르크민속박물관을 비롯한 프랑스, 영국, 덴마크, 오스트리아, 러시아,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 등 전 세계에 1000점이 넘게 전한다. 위에 소개한 그림은 201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문화재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소개된 바 있다.

김준근의 출신지로 알려진 원산(元山)은 현재의 행정구역상 북한 강원도에 자리한 항구도시이며, 1880년 개항된 이후로 외교사절, 선교사, 상인 등 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조선의 의식주와 생업, 일생의례, 놀이문화, 세시풍속 등을 소재로 한 기산풍속도는 서양인들에게는 매우 이색적이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일제의 강점을 계기로 풍속화 수요가 줄어들면서 이후 그의 회화이력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2004년 평양의 조선중앙통신은 176점의 기산풍속도가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애석하게도 당시 발굴한 북한 소재 기산풍속도를 직접 볼 수는 없으나, 기사를 통해서나마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기사에는 “먹과 수채화로 그린 다양한 주제의 인물 풍속화들은 당대의 사회생활에 대한 깊은 인식을 주고 있다”, “당시 사람들의 농업생산 활동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각이한 형태와 행동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북한의 예술종합잡지 ‘조선예술’ 2006년 10월호에도 이때 발견된 기산풍속도에 대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우리 민족의 상무적 기풍을 보여주는 예로 “화첩에 그린 활쏘기 그림들에는 서서활쏘기, 달리며 활쏘기 경기장면들과 아이들의 활쏘기 연습 장면들이 있다”는 언급과 함께 김준근이 그린 인물화첩은 전통적인 민족생활풍습을 다양하게 담고 있는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평가는 전통의 미술작품을 대하는 시각이 남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분단 후 7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미술 분야를 비롯해 전통 문화예술 연구에 대한 남북한 학계의 접점을 찾는 노력은 단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윤희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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