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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한들한들 코스모스 반가운 손짓

입력 : 2017-09-08 10:00:00 수정 : 2017-09-06 21: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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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계절이 닿는 곳 강원 평창
도심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도 여름의 열기 가시지 않았는데

태기산 오르막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을의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메밀꽃… 하얗게 만개해 깜깜한 밤을 밝힐 날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강원 평창 태기산을 아침에 찾으면 우거진 나무 사이로 스며든 햇살을 맞은 채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들이 반긴다.
하루아침에 계절이 바뀐 듯합니다. 얼마 전까지 하루 종일 푹푹 찌던 날씨가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해져 외투를 찾게 하네요. 

그래도 낮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여름의 자취가 남은 듯 더위가 여전합니다. 가을이 어서 오기를 바라지만 더위는 뭐가 아쉬운지 쉽게 물러가지 않을 기세입니다. 기다리면 언제가 선선한 바람에 실려 가을이 다가 올 겁니다. 계속 비를 뿌리던 우중충한 하늘도 어느새 높고 파란 가을 하늘로 변했습니다. 하루라도 먼저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러 떠나고자 합니다. 일년에 두달 남짓한 나들이 계절 가을이 지나면 금세 겨울입니다.

우리 땅이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먼저 가을이 다다른 곳이 있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과 가깝고, 선선한 바람과 가을 꽃향기들이 코끝을 간지럽게 하는 곳입니다. 

평균 해발고도가 700m에 이르고, 조금 오르막을 올랐다 싶으면 해발 1000m 근처에 도착합니다. 높은 곳이니만큼 기온은 낮아 여름이 빨리 지나가고 가을은 빨리 오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강원 평창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from. 가장 먼저 계절이 닿는 곳, 강원 평창에서

*P.S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강원 평창 태기산을 아침에 찾으면 우거진 나무 사이로 스며든 햇살을 맞은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펴 있습니다.


평창 청옥산에서 내려다보는 산봉우리들의 물결은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촘촘히 놓인 능선이 끝없이 펼쳐져 가슴속 응어리를 속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듯하다.
◆하늘 아래에서 느끼는 청명한 가을


기존 영동고속도로를 비롯해, 제2영동고속도로까지 개통돼 서울에서 강원도로 향할 때 도로사정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속도를 내며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긴 힘들다. 서서히 찾아오는 가을의 분위기를 느끼려면 경기 양평을 지나 강원 횡성을 거쳐 평창으로 향하는 6번 국도가 좋다. 양평을 지날 때 아직 가시지 않은 여름을 느끼다 횡성에 이르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속도를 낼 수 없는 구간이다. 선선한 바람이 서서히 피부에 와닿는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다. 이 산길은 바로 횡성과 평창에 걸쳐있는 태기산을 오르는 길이다. 태기산의 옛 이름은 덕고산이었다.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왕 태기왕이 이 산에 성을 쌓고 신라에 대항한 후 태기산이라 불렸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 산길은 태기산(해발 1261m)의 8부 능선인 해발 980m를 넘어 이어진 ‘양구두미재’로 지역 사람들은 양구데미라 부른다.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듣고 용한 지관을 통해 아버지의 묘를 쓴 곳이 바로 이 고갯마루였다. 그러나 재산이 불지 않자 선비는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들어냈는데 땅속에서 두 마리의 황금비둘기가 나와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비둘기 두 마리를 뜻하는 ‘양구(兩鳩)데미’라 불렀다고 한다. 먹을 것이 귀하던 산골에서 일은 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던 이의 삶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평창 봉평은 9월이면 들녘을 덮는 하얀 메밀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꼬불꼬불 이어진 양구데미를 오르다 보면 태기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양구데미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평창 봉평으로 빠지게 된다. 봉평으로 넘어가기 전에 태기산 정상 비포장길로 운전대를 돌리자. 가을 하늘과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다. 비포장 구간이 나오지만 그래도 평탄하게 잘 닦여 있다. 다만 과속방지턱이 높아 승용차로는 가기 힘들 수 있다. 비포장구간을 슬슬 오르다보면 중간 중간에 탁 트인 곳들이 나온다. 

해발 1261m 태기산의 표지석.
태기산 정상 가는 길에 표지석과 함께 전망대가 설치돼 있지만, 오르는 길 어디서든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 가을 하늘 풍광을 즐기면 된다. 머리 위로는 파란 하늘과 구름뿐이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한 편은 횡성이고, 반대쪽은 평창 시내다. 새파란 하늘 아래 구름바다가 펼쳐지고, 그 사이로 산봉우리들이 섬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여기에 풍력발전기들이 ‘휭휭’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한다. ‘1261m 태기산’이 쓰인 표지석에 이르면 정상 근처다. 표지석에서 조금 더 올라야 정상인데 그곳엔 군부대가 있어 꼭대기까지 오를 순 없다.

태기산에서 화창한 가을 날씨를 좀 더 즐기려면 산책로를 거닐면 된다. 양치식물길, 조릿대길 등으로 이름 붙여진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태기산 표지석 부근엔 고사리, 고비 등 양치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표지석에서 내려오다보면 조릿대길 등을 만나는데, 길가엔 보랏빛 물봉선화와 하얀 개구릿대 등이 눈에 띈다. 물봉선화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개구릿대는 꼿꼿이 고개를 쳐든 채 햇살을 받는다. 아침 일찍 이 길을 지나면 우거진 나무 사이로 스며든 햇살과 슬며시 껴있는 안개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경을 만나게 된다.

태기산에 핀 물봉선화.
평창에서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는 미탄면 청옥산도 있다. 평창과 정선 경계에 있는 청옥산은 태기산보다 5m 낮은 1256m다. 청옥산 정상 부근엔 육백 마지기라는 평원이 펼쳐져 있다. 평지가 드문 강원도에서 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는 평지라고 해서 이름 붙은 곳이다. 정상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이 있어 승용차로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잘 정비돼있다. 계속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어느새 평지가 펼쳐지고, 그 끝 부분에 전망대가 서있다. 이맘때 전망대까지 가는 길 옆에선 수국 등 화훼작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와 무밭이 펼쳐져 있다. 청옥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산봉우리들의 물결은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촘촘히 놓인 능선이 끝없이 펼쳐져 가슴속 응어리를 속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듯하다.

이효석 문학관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일부 내용.
◆희고 붉은 꽃이 손짓하는 가을의 향기


청명한 가을 하늘의 기운을 마음껏 마셨다면 이번엔 꽃향기를 들이킬 차례다. 가을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 평창은 희고 붉은 꽃이 만발한다.

산 정상에서 흰 운무를 내려볼 수 있다면, 평지에선 흰 메밀꽃의 파도가 일렁인다. 이효석 선생의 대표적인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자, 선생이 나고 자란 봉평은 해마다 9월이면 들녘을 덮는 하얀 메밀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메밀꽃 필 무렵’의 표현처럼 평창 봉평면은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펴있다.

이효석 문학관에 전시된 ‘메밀꽃 필 무렵’ 영화 대본.
이효석 문학관에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장면을 디오라마식으로 재현해놨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허생원이 봉평에서 대화장으로 향하거나, 성서방네 처녀와의 추억을 그리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것이 반짝이는 메밀밭이다. 휘영청 달이 뜬 밤에 별빛처럼 반짝거리는 메밀꽃들의 이루는 풍경은 낭만이 따로 없다.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배경으로 메밀꽃밭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공유는 김고은에게 메밀꽃을 내밀고, 메밀꽃밭에서는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인과 로맨스를 꿈꾼다면 현실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메밀밭 로맨스’를 즐길 수 있는 ‘평창효석문화제’가 10일까지 열린다.

인근에 있는 이효석 문학의숲도 잊지 말고 들리자. ‘메밀꽃 필 무렵’ 소설 배경지인 봉평의 정취를 느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소설 속 장터, 충주집, 물레방아 등이 재현되어 있다. 돌에 소설 속 내용이 새겨져 있어 숲 속을 거닐면 자연스레 책 한 권을 눈으로 읽고, 볼 수 있다.

백일홍 꽃밭에 조성된 수세미 터널.
흰 꽃으로 부족하다면 붉은 백일홍 꽃바다도 있다. 평창강 둔치 약 3만㎡에 100만 송이 백일홍이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100일이 넘도록 붉은 꽃을 피워 백일홍이다. 비슷한 시기에 붉은 꽃이 피는 배롱나무도 백일홍, 백일홍나무라 불리지만 둘은 전혀 다른 종이다. 붉게 보이는 백일홍 꽃밭을 들여다보면 빨간색, 주황색, 분홍색뿐 아니라 희거나 노란 꽃까지 알록달록하다. 형태도 야구공처럼 둥글게 핀 꽃이 있는가 하면, 원반처럼 납작하게 핀 꽃도 있다. 백일홍 꽃바다에서 멀지 않은 바위공원 근처엔 황화코스모스가 만개해 있다. 백일홍이 다양한 색으로 여행객을 유혹한다면, 황화코스모스는 짙은 노란색 한 종류다. 강변을 노랗게 물들인 코스모스밭을 거닐면 성큼 다가온 가을을 걷고 있는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창=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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