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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텃밭은 풍성했다. 고추는 따도 따도 끝없이 올망졸망 열렸다. 팔뚝만 한 것들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뿌린 만큼 거두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별로 해준 것도 없다. 그저 모종을 심고 몇 차례 물을 준 것뿐, 결국 햇볕이 그들을 키웠다. 올해는 아니다. 지난달 햇볕 대신 비가 자주 쏟아진 것이다. 가지는 손가락만 하고 고추는 시들시들했다.

햇볕은 사람에게도 절대적이다. 세로토닌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호르몬이다. 햇볕을 통해 분비된다고 한다. 장마 때 울적하다 가을 햇볕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세로토닌의 영향이다. 햇볕이 생성하는 비타민D는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 일조량이 적은 북유럽인들은 식품을 통해 비타민D를 섭취해야 한다. 한국은 햇볕이 풍부하다. 이 청명한 가을,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30분만 산책해도 건강해지는 한국인은 복받았다.

햇볕이 눈부신 곳은 지중해다. 로버트 캐플런은 저서 ‘지중해 오디세이’에서 “그리스는 잔혹할 만큼 적나라한 빛을 과시한다”고 했다. 세상을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는 ‘그리스인 조르바’도 지중해의 햇볕 덕에 가능할 것이다. 햇볕 아래 세상의 윤곽은 뚜렷하고 입체감이 살아난다.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햇볕을 보고도 사람들이 아등바등해지기란 어렵다.

북한에 그렇게 많은 햇볕을 퍼부었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수소핵폭탄으로 돌아왔다. 우화 ‘북풍과 해’의 스토리를 대북정책에 끌어들인 것은 절묘했지만 우화는 우화일 뿐 현실이 아니었다.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그곳은 밑 빠진 독이었을 뿐이었다. 햇볕정책은 누구의 옷도 벗기지 못했다. 김정은이 조르바이길 바라는 것은 천진난만한 생각일 뿐이다. 지하궁전 어두운 곳에 깊숙이 숨어 사니 살기등등할 수밖에 없다. 그 곳은 햇볕도 안 통하는데 달빛은 더 어렵다. 해가 없으면 달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난주 가지와 고추를 다 뽑아내고 퇴비를 뿌린 뒤 밭을 깊게 뒤집었다. 다음주에는 배추와 무 모종을 심을 계획이다. 가을 햇볕이 찬란하기를 빌 뿐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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