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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들 입맛 훔친 별미집… "아무나 흉내 못내지요"

입력 : 2017-09-01 18:35:43 수정 : 2017-09-01 18: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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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이 자주 찾은 '단골식당' 직접 가 봤더니

 



“대통령도 해초에 회를 싸 드셨어요”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의 단골식당이라는 서울 여의도의 H 식당을 찾았다. 평일 낮인데도 하루 예약이 꽉 차 직원들은 이리저리 테이블을 세팅하느라 분주했다. H 식당의 이윤정 점장에게 문 대통령이 즐겨 찾던 메뉴가 뭔지 똑같이 달라고 주문했다. 이 점장은 “문 대통령이 주로 점심 때 정식을 시켰다”며 한상차림을 차려왔다.

경남 거제 출신인 문 대통령은 해산물을 좋아했다. 마치 대통령이 된 기분으로 한술 뜨려하자 점장은 “이것이 우리 가게의 메인이며 문 대통령이 즐겨 드셨다”면서 세꼬시가 담긴 접시로 손을 가져갔다.  ‘세꼬시’는 부산지역에서 흔히 쓰는 말로 광어를 뼈째 썰어먹는 회를 일컫는다. 문 대통령은 세꼬시를 해초와 생미역에 싸 먹길 즐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단골 서울 여의도 H식당의 정식메뉴


문 대통령이 자주 찾던 H식당. 한 공간에 60명까지 수용가능하다.

생미역에 싼 세꼬시를 입에 넣으니 아삭한 미역의 식감과 회의 담백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회를 먹다 느끼한가 싶으면 함께 나온 칼칼한 매운탕으로 속을 달랠 수 있었다. 술이 생각날 법한 메뉴였지만 문 대통령은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점장은 “문 대통령이 수행원, 기자들을 데리고 큰 방에서 1~2시간씩 담소 나누길 좋아했다"며 “그러면서도 술은 절대 드시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문 대통령 선거캠프의 윤건영 상황실 부실장은 “몇몇 음식점을 자주 이용한 것은 여러 사람과 대화하기 편한 곳이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의 단골 음식점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 만큼 H 음식점은 60명이 동시에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 돼 있었다. 국회와 당사가 있는 여의도의 음식점인 만큼 정치인들의 사인이 벽에 걸려있었는데 그곳엔 문 대통령이 지난 2012년에 남긴 익숙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사람이 먼저다”
 
H식당에 걸려있는 문 대통령의 사인.

◆ 노무현의 삼계탕, 김영삼의 국수집

넓은 공간에서 식사를 즐겼던 대통령은 또 있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근처에 위치한 T 삼계탕집을 자주 찾았다. 처음 삼계탕집에 발을 들이니 한옥구조로 된 식당 중심에 웬 나무가 보였다. 식당은 마당처럼 돼 있어 어린아이가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식당 종업원도 “제가 본 삼계탕집 중 여기가 가장 크다”며 싱긋 웃었다.

식당 한편에 마련된 넓은 방에는 노 전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식사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있었다. T 삼계탕집의 최병배 과장은 “이곳에서 노 전 대통령이 유명 정치인들과 식사를 자주 했다”면서 “삼계탕을 좋아하셔서 올 때마다 한 그릇을 모두 비우고 가셨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서울 종로 T 삼계탕집에 걸려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

노 전 대통령이 먹던 삼계탕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 냉큼 한 그릇을 주문했다. 10여분이 지나자 펄펄 끓는 삼계탕과 김치가 식탁 앞에 놓였다. 조심스레 삼계탕을 반으로 가르니 은행, 대추, 인삼, 찹쌀 등 보양재료들이 튀어나왔다. 이집에서 사용하는 닭은 영계라 크기는 작았지만 그런 만큼 쫄깃함이 더했다.

삼계탕 국물을 한 숟갈 떠 마시니 그제야 노 전 대통령이 왜 이곳을 찾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은은한 인삼 향과 쌉싸래하고 걸쭉한 국물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노 전 대통령은 고된 업무를 마치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심신을 위로했을 듯싶다. 

한번은 노 전 대통령이 주인에게 삼계탕의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은 “가르쳐줘도 따라하지 못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질문을 맞받아쳤다. 물론 기자에게도 맛의 비결을 공개하지 않았다. T삼계탕의 주인이 본래 한의원을 운영하다가 가게를 차렸다던데 ‘약재’에 비결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노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T 삼계탕집 상차림.

대통령의 단골집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 있다면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국시집’이 아닐까. 국수집도 아니고 국시집이 뭘까.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 사투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집 칼국수 맛을 사랑해 청와대로 가게 주인 할머니를 초청해 조리장에게 칼국수를 배우게 했다고 한다. 오찬마다 칼국수가 나와 정치인들은 밖에 나가 밥을 한 끼 더 먹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국시집’ 칼국수의 무엇이 김 전 대통령을 사로잡았을까 궁금해 가게를 찾았다.

현재는 국시집 주인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딸이 식당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혹여 맛이 그때와 달라졌을까 걱정하자 식당 종업원은 “50~60대 손님들이 칼국수 맛을 잊지 못해 자주 찾아오는데 맛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라며 기자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등장한 칼국수는 다소 단출해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국시집' 칼국수

시중의 푸짐한 칼국수와 달리 얇은 면발에 고명도 호박, 다진 고기 약간이 전부였다. 거기에 양배추와 배추로 만든 김치 두 접시가 달랑 나왔다. 한 젓가락을 들어 입안에 넣으니 면발이 사르르 풀렸다. 국물도 과하지 않고 담백해 속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평소 소탈하기로 알려진 김 전 대통령은 이런 소박한 맛에 끌렸던 것 같다.

식당 맞은편에 살고 있는 성북동 주민 최모(71)씨는 “VIP(김 전 대통령)가 야당시절부터 주인 할머니와 친해 삶에 대한 조언을 듣고 가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시집의 별관 3층을 가리키며 “VIP는 1달에 한 번씩 찾아와 저곳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며 “지금도 귀빈이 올 때만 저곳을 개방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시집의 별관은 평소에 비워뒀다가 대기업 총수나 유명 정치인이 방문할 때마다 일시적으로 개방한다고 한다.

1968년 생긴 성북동 국시집은 최근 ‘서울시가 지정하는 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서울시가 나서 역사가 담긴 칼국수의 맛을 지키기로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랑한 서울 종로구 S 식당의 홍어삼합.

◆ 고향의 맛 김대중의 홍어사랑, 사라진 이명박의 단골식당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홍어 전도사’라고 불릴만큼 홍어를 사랑했다.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전국 홍어가 모두 청와대에 가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다. 

전남 신안 출신인 김 전 대통령은 종로에 위치한 홍어전문 S 식당을 자주 찾았다.

S 식당은 어머니가 운영하는 곳과 조금 떨어져 딸이 운영하는 집으로 나뉜다. 메뉴가 같다고 하여 딸 허정은씨가 운영하는 곳을 찾았다. 역시 김 전 대통령이 즐겨먹었다는 메뉴를 주문했다. 그러자 식탁으로 수십 가지의 반찬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리는 게 호남 식당의 특징이라고 한다. 밥 한 공기를 먹는 데 다채로운 맛이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단골 홍어전문 S식당의 코스 메뉴.

S식당은 콘셉트는 확실히 ‘홍어’다. 이 집 대표메뉴인 홍어삼합을 필두로 홍어전, 홍어애탕국(전남 향토음식으로 홍어 내장을 넣어 끓인 국) 등이 상에 놓이자 방 안은 순식간에 홍어 냄새로 가득 찼다. 홍어삼합은 묵은 지에 편육, 홍어를 싸서 먹는 것이다. 한 입 싸 먹으니 코로 시큼한 홍어향이 단번에 올라왔다. 주인 딸의 말을 빌리면 김 전 대통령은 그 맛을 두고 ‘고향의 맛’이라고 표현했단다. 이 맛을 위해 S식당은 전남에서 해산물을 직접 공수해온다.

홍어 다음으로 S식당에서 유명한 것이 ‘낙지꾸리’다. 꾸리는 ‘감는다’는 뜻의 우리말인데 파에 살짝 데친 낙지를 감아먹는 데서 ‘낙지꾸리’라는 음식이 탄생했다. 낙지꾸리를 입에 넣으니 파의 상쾌함과 데친 낙지의 불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당시절 4인 식탁에 8명이 둘러앉아 이 낙지꾸리와 홍어를 즐겨먹었다고 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를 함께하고 싶어 해 ‘S식당에 가면 공천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식당 주인 허씨는 “이런 홍어전, 낙지꾸리 같은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은 서울에 우리 가게밖에 없다”며 호남의 맛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서울 조계사 뒤편 유정. 지금은 사라지고 쌀국수집이 자리했다. 사진=연합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시절 사옥근처에 있던 ‘국시집’과 서울시장 시절 조계사 근처에 있는  한정식 집 ‘유정'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그중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단골이었다던 유정을 찾아가봤다.

조용하고 한적한 조계사 뒤편에 다다르자 유정이란 간판은 온데간데없고 P 쌀국수집이 그 자리에 자리해있었다. 쌀국수 집에 들어서니 사장이 유정 주인 아주머니의 아들이란다. 

60년 전통의 유정의 업종을 바꾸게 한 것은 지난해 실시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었다. 김영란법의 실시로 고급한정식의 가격에 제동이 걸렸고 종로인근의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내려가며 유정 집은 쌀국수 집으로 변모했다.

P 쌀국수 집 사장은 “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던 시절 장소가 조용해 유명 정치인들이 많이 다녀갔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한정식을 잘 안 찾아 대중적인 쌀국수로 업종을 변경했다”고 전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사진=서재민·이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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