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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페스티벌]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서 울려퍼진 환상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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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03 10:00:00 수정 : 2017-08-30 21: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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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로나
베로나 거리는 ‘요새 도시’로 건축사적 가치가 인정돼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가득한 달빛 아래 웅장한 합창곡이 퍼져나간다. 압박과 설움에 놓인 히브리 민중들이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간절한 호소가 가슴을 가득 채운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백미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다.

지난밤, 베로나에 도착해 곧바로 고대 원형경기장, 아레나로 향했다. 어둠이 내린 여름 하늘은 별빛으로 가득했고 객석은 손에 받쳐든 촛불로 반짝였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베르디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중 하나인 나부코가 상영된다. 유대 민중의 역사를 재현한 나부코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던 이탈리아 민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고 베르디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부상하게 된다. 특히 압박과 설움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히브리 민중의 처지는 이탈리아 민중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으며 곧 독립과 자유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아레나 위로 울려 퍼지는 오페라는 수천년 전 히브리 민중의 간절함을 생생히 전해 준다. 같은 처지에서 공연을 감상했을 수백년 전 이탈리아 민중들의 열광이 이해될 듯하다. 밤늦도록 이어진 공연이 끝나고도 수많은 관람객은 아레나에서 이어진 브라광장을 떠나지 못했다. 그 흥겨움에 함께 어울리다 새벽이 가까워서야 호텔로 들어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올라섰다는 발코니는 소박하고 작은 외관에도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다.
다시 맞은 베로나의 아침은 어제의 공연 열기를 잊은 듯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여행의 피로도 잊은 채 이른 아침 베로나 시내로 향했다. 베로나가 위치한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는 백운암 산맥을 배경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가르다 호수와 완만한 에우가네안 언덕으로 이뤄져 있다. 그 위에 베로나, 비첸차, 파도바와 같은 웅장한 고대 도시가 있어 인간이 만든 창조적인 아름다움과 신이 만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지역이다. 로마 다음으로 로마 시대의 많은 유물이 풍부히 남아 있으며 중세 통치자들이 이 지역에서 나는 분홍빛 석회암(로소 데베로나)으로 지은 훌륭한 궁전도 많이 남아 있다.

베로나의 중요한 유적지 가운데 하나는 지난밤 오페라 공연장으로 쓰인 로마 원형 경기장, 아레나다. 로마 콜로세움, 산타 마리아 카푸아 베테레의 원형 경기장 다음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또 하나는 다채로운 시장이 열리는 에르베 광장이다.

베로나 피아차 에르베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단테 동상.
로마 제국 시대부터 고대 로마의 공회당 자리에 건설된 에르베 광장은 베로나의 중심지였다. 이 주변에 뛰어난 건축물 중 일부는 중세에 세워졌으나 대부분 고대 시대에 세워진 것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의 집은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도시로도 유명하다. 도시 곳곳에 운명적 사랑의 상징이 된 두 주인공을 위한 기념물이 있다.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엔 많은 관광객이 붐볐다. 유난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입구부터 모든 벽 사랑을 기원하는 낙서가 가득하다. 정원 가운데는 줄리엣 동상이 있다. 동상은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사람들의 손길이 가득하다. 그 옆으로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올라섰다는 발코니는 소박하고 작은 외관에도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다. 대부분 연인인 관람객들은 각자의 상상을 더하여 그들의 커다란 사랑을 꿈꾸는 듯하다. 

줄리엣의 집의 벽에는 사랑을 기원하는 낙서가 가득하다.
줄리엣의 집을 나와 피아차 에르베(Piazza Erve)로 들어섰다. 에르베라는 이름은 베로나의 유서 깊은 약초 시장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차양이 뒤덮인 거리에는 발길을 멈추게 하는 빵 냄새부터 먹음직스러운 과일, 그리고 구운 새끼 돼지고기와 다양한 채소들이 넘쳐난다. 노점상을 지나 고래 늑골이 매달려 있었다고 하는 늑골 아치(아르코 델라 코스타)를 통해 피아차 데이 시뇨리(Piazza dei Signori)에 이른다.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19세기 단테 동상이 반갑게 맞아준다. 동상 뒤편으로 베로나 출신 로마시대 명사들 동상이 건물 위에 세워진 ‘로지아 델 콘실리오’가 있다. 로마시대부터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까지, 그리고 오늘날 베로나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베로나 피아차 에르베 광장의 이름은 베로나의 유서 깊은 약초 시장에서 유래했다.
‘요새 도시’로 건축사적 가치가 인정돼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서 깊은 베로나 거리 ‘파세자타(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출출함이 느껴졌다. 브라 광장에서 어제 저녁 화려한 불빛에 비치던 아레나를 바라보며 점심 식사를 했다.

베로나 거리 ‘파세자타(산책로)’에서 행위 예술을 하는 현지인들.
베네토 지방 전통 음식은 주로 가르다 호수와 아드리아해에서 나는 신선한 생선과 해산물로 만든다. 파스타는 북동부 전역에서 즐기는 음식이지만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폴렌타와 여러 종류의 리조토가 더욱 보편적이다. 활기 넘치는 교역 중심지여서 교역국 영향으로 단맛, 신맛, 강한 자극성이 있는 다양한 음식 종류와 절임 음식들이 있다. 내륙의 육류와 치즈는 해산물과 어울려 미각을 돋운다. 이 지방에서 레드, 화이트, 로제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와인이 다양하게 생산되지만 프로세코라는 거품이 이는 와인을 전식주로 주문했다. 시원한 한 모금으로 시작한 점심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에 지친 피로를 씻어 내려주는 듯하다.

이탈리아 베네가추 와이너리의 포도송이들이 초록빛으로 감싸여 있다. 마치 초록 물결이 하늘 아래 바다를 이룬 듯하다. 16세기부터 고품질의 와인이 생산된 곳이다.
점심을 먹고 베로나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베네가추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16세기부터 고품질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었던 이 지역에서는 베니스의 공식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와인으로 유명했다. 프랑스 대통령 드골이 즐겨 마셔 대통령이란 뜻의 ‘카포 디 스타토’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16세기부터 고품질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었던 베네가추 와이너리에서는 베니스의 공식 행사에서 쓰는 와인을 생산한다.
여름철 뜨거운 태양을 가득 품은 포도송이들은 초록빛으로 감싸여 있다. 마치 초록 물결이 하늘 아래 바다를 이룬 듯하다. 테이스팅을 위해 안내해준 장소에는 미리 준비된 와인과 잔들이 놓여 있고 담당자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이 지역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었다. 운전을 해서 베로나로 다시 되돌아와야 해서 간단한 시음으로 만족해야 했다. 깊고 선명한 루비 색상 와인은 매우 우아하고 복합적이다. 이 지역 자연을 다 품은 듯 다양한 허브향과 과일 향이 어우러지는 듯하다. 기념으로 한 병을 구입하고 넓은 포도밭을 떠나왔다.

베로나 아레나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마친 후 어둠이 내린 베로나 거리.
다시 베로나로 돌아오는 길은 두 번째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렌다. 어둠이 내리는 베로나는 벌써 공연을 기대하는 관람객들로 들떠 있다. 오늘밤 아레나에서 공연될 오페라는 ‘아이다’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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