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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퇴근을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다"…'감옥' 갇힌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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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29 19:33:10 수정 : 2017-09-01 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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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는 메신저 업무지시 ‘노이로제’/회사원 86%가 스마트폰 등 활용 업무/ 일주일 간 추가 업무시간 11시간 달해/ 급한 업무처리 지시 연락은 42% 불과/“상명하복 문화에 카톡 24시간 대기조”
# “카톡, 카톡.” 지난 28일 오후 퇴근길 만원버스 안. 5년차 직장인 이모(32)씨는 힘겹게 스마트폰을 꺼냈다. 역시 부장의 메시지였다. “이 대리, 그 보고서는 잘되고 있나?” 이씨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이상 없이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녁 맛있게 드시고, 편안한 밤 되십쇼!” 부장에게 답장을 보내고 난 이씨는 ‘오늘은 바로 (답장을) 보냈으니 뭐라고 하시진 않겠지’라며 안도감을 느꼈다. 동시에 ‘이건 내일 아침 출근하고 나서 물어봐도 되잖아’라는 반감이 교차했다.

#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2년차 직장인 박모(30)씨는 업무와 관련된 단체 카톡 대화방이 10개에 달한다. 부서 막내로 대화방 알림이 울리면 가장 먼저 답을 하는 박씨는 자신을 ‘카톡 24시간 대기조’라 표현한다. 박씨는 “몇 개의 대화방이 동시에 울리면 답을 올리느라 정말 ‘멘붕’(멘탈붕괴)이 온다”며 “업무시간에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퇴근하고도 카톡이 언제 오지 않을까 신경을 써야 하니 이게 ‘카톡 감옥’이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퇴근 후까지도 각종 모바일 메신저로 계속 업무 관련 문의와 지시를 받는 수많은 직장인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호소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회사나 상사의 문자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에 스트레스를 받아서다. 회사원들 사이에선 ‘적폐’ 중 하나라는 말조차 나온다고 한다.

◆“퇴근을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다”

각종 조사에서 많은 회사원이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이 전국의 제조업·서비스업 근로자 240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6.1%가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으로 업무를 하고 있다.

스마트기기를 사용한 근로자들의 평일 초과근무 시간은 평균 1.44시간(86.24분)이었고, 휴일에도 평균 1.60시간(95.96분)에 달했다. 일주일 동안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677분, 11시간이 넘었다. 근로기준법에서 허용되는 연장노동이 주당 12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스마트기기를 통한 추가 업무시간 문제는 가볍게 볼 상황이 아닌 것이다.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함께 발표한 ‘근로관행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현실은 여실히 드러났다. 500개 기업의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0명 가운데 7명은 퇴근 후 업무연락을 받아 봤다고 답했는데, 급한 업무처리로 연락을 받았다는 답변은 42.2%에 불과했다.

경기도의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이모(35)씨는 “퇴근 후 직장 상사가 카톡으로 업무를 지시하면 이건 퇴근을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다”며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토대가 아닌가 싶다”고 씁쓸해했다.
◆‘퇴근 후 카톡 금지법’ 봇물

퇴근 후 업무지시가 사회문제화하자 정치권에서도 퇴근 후 문자, 카톡 등을 이용한 업무지시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일명 ‘퇴근 후 카톡금지법’)이 잇따라 발의됐다. 발의된 법안은 현재까지 4건.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퇴근 후 문자나 SNS 업무지시를 할 수 없게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위한 법개정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올해 3월에는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근로자가 근로시간 외의 시간에 전화, 문자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한 지시에 따라 근로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근로시간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아 법률이 개정된다고 해도 실제 현장에서 효과가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퇴근 후 상사의 업무지시에 부하직원이 법 규정을 따지기가 쉬운 일이겠느냐”며 “또 업무마다 특성이 다른데, 일률적인 법 적용이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유럽은 이미 진행 중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는 최근 ‘퇴근 후 업무연락 금지’ 조항을 노동개혁법안에 포함시켜 세계 최초로 시행 중이다. 종업원 50명 이상 기업의 근로자는 ‘근무시간 외 업무 관련 메일 수신을 거부할 법적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로그오프법’이다. 독일에서는 2012년부터 정신적 부담으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안티스트레스법안’의 제정을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해외사례처럼 국내 회사원들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을 준수하려는 분위기부터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시간 근로문화가 고착돼 있는 한국 현실에서 ‘근로시간 준수’라는 전제부터 해결돼야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시행되더라도 사문화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소 연구위원은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 차원에서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의 경계에 있는 사례에 대한 법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지침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무시간 외 지시 NO”… ‘꿀 휴식 캠페인’ 확산

“근무시간 이외에 SNS를 통한 과도한 업무지시로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치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일명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의하면서 입법화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일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적으로 퇴근 후 업무지시를 금지하면서 조직문화를 바꿔 나가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지난 6월 직원들의 퇴근 후 휴식권을 보장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꿀휴식 캠페인’을 시행했다. 휴가나 대체휴가 등 쉬는 날과 퇴근시간 이후에는 카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이메일·전화·문자 등을 통한 업무 연락을 하지 못하게 하고, 새 업무지시는 가급적 일의 시작과 동시에 내리며 퇴근시간이 임박해서는 금지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이랜드는 꿀휴식 캠페인이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익명 제보 센터’를 개설해 캠페인을 지키지 않은 임직원은 대표와 면담 등의 인사교육을 받게 했다.

CJ그룹도 지난 5월부터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퇴근 이후와 주말에 문자나 카톡 등으로 업무지시를 금지했다.

경기 광명시는 지난 7월 초 직원 월례회의에서 ‘광명시 직원 인권보장’을 선언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퇴근 후 SNS를 이용한 업무지시 근절’을 전국 최초로 시정에 반영했다. 광명시는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 퇴근 후 카톡 등을 이용한 업무지시 여부를 간부공무원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후 다른 지자체들에서 벤치마킹을 위한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광명시에 따르면 경상북도와 부산시 기장군 도시관리공단 등 지자체 및 공공기관에서 벤치마킹을 요청하는 전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도 지난 21일 구 간부회의에서 ‘퇴근 후 SNS 업무지시 금지’를 위한 실천결의문을 채택했다. 구는 확대간부회의에서 무분별한 업무용 SNS 사용을 줄이기 위한 ‘청렴실천결의 선언식’을 가지기도 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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