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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같은 미장센 ‘감동’… 갓쓰고 외국어 노래 ‘어색’

입력 : 2017-08-27 20:46:45 수정 : 2017-08-27 22: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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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리뷰
“여자는 지푸라기처럼 허물어졌어. 사랑으로 지은 것을 오해로 허물다니.”

바닥에는 잔디가 푹신하고 초저녁 하늘은 크게 열려 있었다. 눈 앞에서는 병풍 같은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이 어스름 속에 환상처럼 빛났다. 변사가 된 배우 채시라는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에게 오해받는 사연을 들려줬다. 26일 서울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야외오페라 ‘동백꽃 아가씨’(사진)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국립오페라단이 평창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동백꽃 아가씨’는 한국 전통이 담긴 세련된 미장센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았다. 음향도 뛰어났다. 다만 전체적 생동감과 메시지 전달 면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았다.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화제였다. 매번 잡음이 많았던 야외오페라인데다 제작비도 25억원이나 소요됐다. 관객 7000명이 모이는 것도 국내 오페라계에서는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 디자이너 정구호가 처음으로 오페라 연출을 맡았다. 정구호는 프랑스 사교계가 배경인 ‘라 트라비아타’를 18세기 조선시대로 옮겨왔다.

‘향연’ ‘묵향’ 등에서 한국 전통을 세련되고 신선하게 승화한 정구호는 이번에도 연출·무대·조명을 맡아 감탄을 자아냈다. 지름 24m의 원형 무대와 스크린을 물들인 민화는 주변을 압도했다. 기생이 된 비올레타는 붉은 저고리와 5m 길이의 자수가 놓인 소복을 입어 눈을 즐겁게 했다. 알프레도는 푸른 도포와 검은 상투관을 쓴 양반 가문의 자제로 그려졌다. 사랑을 잃은 비올레타의 절절한 슬픔도 효과적으로 전달됐다. 비올레타와 아버지 제르몽이 대립하는 장면을 회전하는 무대로 표현한 연출이 돋보였다.

다만 비우고 절제한 무대는 아름다웠지만, 뒤로 가면서 작품의 에너지를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2시간여가량인 공연 시간이 살짝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정서인 시간의 덧없음, 찰나이기에 더 아름다운 삶의 환희, 빛나던 젊음이 스러지는 안타까움은 충분히 표현되지 않아 아쉬웠다.

한복을 입은 성악가들이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는 데서 오는 어색함도 어쩔 수 없었다. 특히 2막에서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비올레타에게 아들을 떠나달라고 할 때 정서적 간극이 컸다. 18세기 조선이라면 ‘너같이 천한 것이 감히 내 아들을’ 하고 분노하는 양반이어야 자연스러운데, 오페라 속 아버지는 내내 신사적이다.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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