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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용’ 꿈꾸지 않는… 美 백인 하층민의 무기력한 민낯

입력 : 2017-08-26 03:00:00 수정 : 2017-08-25 19: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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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D. 밴스 지음/김보람 옮김/흐름출판/1만4800원
힐빌리의 노래/J. D. 밴스 지음/김보람 옮김/흐름출판/1만4800원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에는 가난한 백인 노동계층이 살고 있다. 미국 사회는 이들을 가리켜 ‘힐빌리’(hillbilly)라 부른다.

신간 ‘힐빌리의 노래’는 힐빌리 출신으로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해 실리콘트래시밸리로 진출한 32세 J D 밴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책은 밴스의 성장과정을 그리지만 ‘나는 이런 역경을 딛고 성공했다’는 식의 성공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계층과 가정이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무기력증에 빠진 백인 하층민들의 모습을 고발하는 내용에 가깝다.

저자가 태어난 곳은 빈곤, 이혼, 마약중독 등 각종 사회문제의 집약지였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복지 혜택을 이용해 사치스럽고 게으르게 사는 백인 ‘복지 여왕’(welfare queen)들이 흔했다. 마약을 남용하다 체포되고, 담배를 살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임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난한 살림에도 신용카드로 돈을 빌리고, 고리대금을 얻어 소비하기도 했다. 집마다 마약에 빠진 사람이 한명씩 있었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부모는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화를 내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일자리를 얻더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하고, 게으르게 일하거나 금방 그만뒀다.

힐빌리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왜 힐빌리의 학교에서는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사람이 없었는지. 왜 자신은 하버드나 예일을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저자는 그 이유를 힐빌리의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며 노력 부족을 무능력으로 착각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힐빌리에서 나고 자랐지만,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변화했다. 그는 가정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배웠다면, 해병대에서 ‘학습된 의지’를 배웠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문제를 해결할 공공정책이나 정부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자신 같은 환경에 놓인 아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요소가 무엇인지 먼저 이해한 뒤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때문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진짜 문제는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냐느냐(혹은 일어나지 않느냐)와 관련이 있다.”

미국에서 지난해 6월 출간된 이 책은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백인 하층 노동자 계층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를 설명하는 책으로도 주목받았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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