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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듯 소소한 삶 적은 글 모아…유서처럼 마침표 찍은 시도 선별

입력 : 2017-08-24 20:16:25 수정 : 2017-08-24 21: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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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산문집·시선집 펴내
소년 같은 시인 박남준(사진)이 어느덧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온 환갑(還甲)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1984년 ‘시인’지로 등단한 이래 30여년 써온 시들에서 선별한 ‘박남준 시선집’(펄북스)을 펴냈고, 지리산 끝자락 악양에서 새와 바람과 꽃과 더불어 살아온 내력을 인터넷 카페 ‘박남준 詩人의 악양편지’에 일기 쓰듯 올린 글들을 모아 산문집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한겨레출판)도 내놓았다.

산문집은 시인이 원고료가 궁하더라도 다시 쓰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는데 출판사 측이 인터넷카페 글들을 선별해 책으로 묶어주었다. 시는 아무래도 정색을 하고 써야 하고, 길게 늘어지는 산문은 읽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나 이번에 묶인 글들은 시 같기도 하고 산문처럼 편안한 내용이어서 악양에 사는 늙은 형님이 보내준 다감한 일기처럼 읽힌다.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 240장이 실려 있거니와 꽃들이 많다. 막 피어나기 위해 봉오리를 닫고 있는 앵초꽃 이야기.

“너 어디다가 주먹질이냐/ 뭐가 못마땅한 거야/ 아흐 그거 맞는다고 아프기라도 하겠냐/ 간지럽겠다/ 갓난아기가 주먹을 쥐고 있는 것처럼/ 자자 그러지 말고 손 펴봐/ 그래그래 착하지^^ 흐/ 앵초꽃이 피었다”(‘누구를 꾀자고 너는 그렇게’)

시인의 유머는 그리 날래지는 않으나 읽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웃음을 머금게 되는 따스한 성질이다. 도시로 나들이를 갔다가 골목 담벼락 꽃밭에 세워진 이런 팻말에 눈길을 주는 안목이야말로 시인의 심성을 웅변한다. 박스를 찢어 서툴게 적어놓은, 어쩔 수 없이 자식 따라 논밭 버리고 올라와 담벼락 밑에 농사짓는 촌로의 경고문. “도동년 나뿐연/ 상추 뽀바간연/ 처먹고 디저라/ 한두 번도 아니고 매년”

지리산의 햇빛과 바람과 새소리와 처마 끝 풍경 소리와 작은 개울물 소리를 엮어서 곶감을 만들고, 돋보기 쓰고 바느질하여 찻잔받침도 만들고, 그리운 이에게 보랏빛 제비꽃 편지도 쓰고, 비 오는 날에는 젖은 시간이 마르는 동안 추억을 말리기도 하면서 지내는 소소한 일상이 따스하게 스며든 글들이 모여 있다.

시선집은 문학의 동반자 유용주, 안상학, 이정록, 한창훈이 뽑은 시들에다 조성국이 발문을 얹었다. 초기 시집 시들 중 일부는 문장을 손질했고 노래가 된 시편들은 노랫말에 맞췄으며, 몸과 마음이 극도로 악화돼 쓰러졌던 무렵 유서를 대신해 시의 마침표를 찍은 것들도 있다. 박남준은 “의식이 살아 있는 한, 아니 내가 쓰러져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되어 인식할 수 없는 공간에 있을지라도 시를 쓸 것”이라며 “시를 짓고 그 시의 집이 되어준 생명들과 만나 집의 안과 밖에서 행복하다”고 서문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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