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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엄마 자격 없나요] 보건소 근처도 못가는데…출산정보는 ‘그림의 떡’

입력 : 2017-08-21 19:05:52 수정 : 2017-08-22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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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 방문 민원인에만 정보 제공
시각·청각장애 등 이동 한계 배려 안 해
중증장애인은 대형병원으로 가야 진료
비싼 의료비에 경제 부담 만만치 않아
#“임신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서 교육받은 적도 없고 전혀 몰랐어요. 임신하고 나서야 엽산제를 먹고 나와 애기랑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당뇨가 있는 사람이 엽산도 안 챙겨 먹었냐, 위험할 뻔했다’고 경고해 주더라고요.”(2년 전 제왕절개로 출산한 지체장애 5급 A씨)

#“임신 사실을 동네 병원에서 알았는데 신장 이식을 한 것 때문에 협진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가야 했어요. 조산을 하게 됐는데 장애인은 보험가입도 안 되는 실정에 기본 2인 병실료 등 병원비가 너무 비싸 경제적 부담이 컸습니다.”(11살 자녀를 둔 신장장애인 B씨)

이들처럼 다수 여성장애인은 임신 전후와 출산에 이르기까지 굳어지다시피 한 정보·의료서비스 차별을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비장애인이 원하는 정보·의료서비스에 수월하게 접근하거나 선택하는 것과 달리 장애로 인한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부실한 지원시스템이 맞물린 탓이다.

◆유익한 임신·출산 정보는 언감생심

취재팀이 최근 여성장애인의 모성권 지원시스템 현황 설문에 응답한 서울(14곳)과 대구(4곳), 경기(13곳), 경남(14곳), 전남(7곳) 지역 기초자치단체 52곳을 대상으로 임신과 출산 전후 알아두면 좋을 6가지 정보를 지역 내 여성장애인에게 제공하는지 파악한 결과 “모두 다 제공한다”는 곳은 전무했다. △편리한 진료·분만 가능 의료기관 △임신 준비 장애인에 대한 건강 관리법과 출산 시 혜택 △임신기간 섭취 가능한 약물 △산전 검사 등 필수 진료 항목 △장애유형별 주의사항과 장애 유전 가능성 △산후조리 및 양육 관련 정보를 일부라도 미리 안내해 주는 지자체 역시 손가락에 꼽혔다.
대다수 지자체가 “보건소를 방문해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는 임산부들에게만 제공하고 있다”거나 “별다른 정보 제공을 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불편한 이동권 등 정보 접근 한계성이 적잖은 장애인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는 지난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2015년 출산지원금(태아당 100만원)을 받은 전국의 여성장애인 49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임신 전 예방접종이나 보조제 적용 등에 관한 건강관리 방법을 보건소 등에서 교육받았다는 응답자는 33.1%(159명)에 불과했다. 여성장애인들은 주로 인터넷과 비장애인용 서적, 지인을 통해 임신과정의 주의사항이나 건강관리, 활용 가능한 제도와 서비스 등을 파악했다. 

5살 딸을 둔 청각장애인 C씨는 “나의 청각장애인 등록사실을 알고 있는 지자체에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었다”며 “하다못해 수화 통역사를 이용 가능한 병원 정보라도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라고 꼬집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성장애인이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질도 떨어지고, 정작 본인의 장애가 임신, 출산에 미치는 영향이나 위험성, 임신과 출산에 따른 장애 심화 가능성 등 꼭 알아야 할 정보를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서해정 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사고에 의한 중도장애인도 본인의 장애가 유전될 가능성이나 기형아 출산에 대한 걱정으로 비싼 돈을 들여 별도의 검진을 받는 등 정보접근권 제약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높은 의료서비스 문턱과 일부 의료진 편견도 걸림돌

여성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달리 병원 선택 시 의료진의 실력이나 시설여건, 이동 편의성, 경제사정 등을 따져보고 고르기가 힘들다. 특히 중증장애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상급의료기관(3차 병원)을 이용해야 할 때도 잦다. 그러면 병원에 오가기도 힘들거니와 보험가입이 안 되는 현실에서 동네 병원보다 훨씬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느라 벅차다.

장애인개발원의 같은 조사에서도 여성장애인은 출산 전과 출산 과정에서 의료 이용 시 힘들었던 점으로 ‘의료비용 부담’(61.7%)과 ‘병원까지의 이동’(24.7%), 장애 산모를 고려하지 않은 의료시설과 장비(6.7%) 등을 지적했다. 
6년 전 셋째 아이를 낳은 D(35·청각장애 2급)씨는 “둘째를 가졌을 때 수차례 하혈을 해 급히 병원을 갔는데 예약을 안 했다고 수화통역사를 구할 수 없어 힘들었다”고 했다.

장애인 임산부를 대할 때 모멸감을 주거나 무턱대고 진료를 꺼리는 일부 의료진과 병원의 행태도 문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중증장애인 건강권 실태조사(2014년)에서 응답자들은 의료 현장의 가장 큰 불만사항으로 ‘의사들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 및 배려 부족(34.8%)’을 꼽았다. 이는 의료진의 장애인권 의식이 낮은 데다 관련 교육도 부재한데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국내 의과대와 간호대 학부 교과과정에는 장애인 의사소통 및 인식과 관련된 교육이 없다. 박종혁 충북대 교수(예방의학)는 “의료인들이 (장애인 환자 등과) 의사소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며 “보건의료인력 학부과정에서 장애 관련 교육을 필수로 지정한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의대, 간호대, 보건대에서 한 과목이라도 개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취학 자녀 둘의 엄마인 시각장애인 유연진(30)씨는 “동네 산부인과의 원장님이 초음파검사 등을 할 때 내가 놀라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분만 때도 소리로나마 그 순간을 생생하게 느껴보라며 탯줄 자르는 동영상을 촬영해 건네주셨다”면서 “정말 편안하게 진료를 받고 아이를 낳았다. 여성장애인에겐 병원 규모와 시설보다 의료진의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가 더 중요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이르면 연내부터 보건의료 종사자를 위한 장애 이해 교육을 대한의사협회 등 각 협회 주관 아래 진행키로 했다. 의료인 양성과정에서 장애 이해 교육을 필수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특별기획취재팀=이강은·최형창·김라윤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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