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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바흐 여행 안하기로 유명 / 자극 넘치는 여행의 분주함보다 / 일상 속 ‘내면의 쉼’·‘멍 때리기’가 / 활력소 창출에 더 효과적일지도 언제부터인지 휴가와 여행이라는 단어가 함께 따라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휴가는 일상의 업무를 중지하고 일정 기간 쉬는 것을 뜻하고, 여행은 일이나 여가를 위해 자기가 거주하지 않은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두 단어가 합쳐지면서 일상의 업무를 중지하는 기간 동안 여가를 위해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휴가 여행을 떠나는 분이 많아졌다. 휴가와 여행은 공통으로 우리를 새로운 환경으로 이끌어 주는 특징이 있다. 일상과 거주지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서 우리는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된다. 아마도 이 매력 때문에 많은 분이 휴가 여행을 떠날 것이다.

작곡가 중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그 이전의 어떤 작곡가보다 많은 여행을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부터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 그리고 독일의 여러 도시로 어려서부터 많은 여행을 다녔다. 어떤 학자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여행의 연속이 모차르트를 요절로 몰고 갔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서유럽의 주요 도시를 거의 모두 섭렵한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많은 이들은 국제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음악적 특징을 융합한 것이 모차르트의 작품 양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최고 명작이라고 칭송받는 독일어 오페라인 ‘마술피리’를 들어보면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 양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에 고단하기는 했겠지만 많은 여행은 분명 모차르트에게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허영한 한예종 교수·음악학
모차르트의 경우와는 달리 여행 무용론을 주장하고 싶은 분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예로 들면 된다. 바흐는 평생을 독일 중부의 튀링겐 지방에서 살았으며 그 지역 밖으로 가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바흐는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이름을 떨치던 비발디의 최신 협주곡을 알고 있었고, 가보지도 못한 프랑스의 양식으로 ‘관현악 모음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모차르트처럼 현장을 직접 여행해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독서를 하듯이 출판된 악보를 통한 간접 경험이기는 했지만 한 지역에만 머물렀던 바흐에게도 타지역의 새로운 자극은 작곡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휴가 여행은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해 준다. 그런데 같은 새로운 활력소를 매일 하던 일상 속에서도 얻을 수 있다면 너무 허무해지는 걸까.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태어나 22년을 살았고 나머지 35년을 빈에 머물렀다. 베토벤도 여행하지 않은 작곡가로 유명하다. 또 베토벤은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작품에 대한 영감은 매일같이 반복한 점심 식사 후의 산책을 통해 얻곤 했다 한다. 그의 잘 알려진 피아노소나타 32곡은 같은 형식의 곡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추구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멍 때리기’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았는지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매일 다니는 길을 습관적으로 걸어갈 때 생각이 집중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자극이 넘쳐나는 여행의 ‘분주함’보다는 일상 속에서 찾아지는 ‘내면의 쉼’ 또는 ‘멍 때리기’가 새로운 활력소 창출에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베토벤의 가장 혁신적인 작품은 ‘합창교향곡’이다. 그 누구도 기악음악이었던 교향곡 장르에 성악 음악인 합창을 포함하는 파격을 시도한 작곡가는 없었다. 말 그대로 ‘장르 파괴’를 한 셈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거의 듣지 못했다고 한다. 작곡가에게 가장 중요한 청력을 잃어 가면서 그는 오히려 더 큰 창작의 힘을 얻었다. ‘합창교향곡’은 청력을 포함한 외부의 모든 자극을 차단한 상태에서 완벽한 ‘멍 때리기’가 가져다준 선물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필자 역시 이번 여름은 독서를 통한 바흐 방식의 간접 경험과 베토벤 방식의 ‘멍 때리기’로 휴식을 취했다고 위안해야겠다.

허영한 한예종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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