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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용박람회서 뽑은 장애인 입사 20일만에 무더기 해고해놓고 사직서 강요한 '갑질' 기업

입력 : 2017-08-18 21:33:25 수정 : 2017-08-18 22: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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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이 주관한 채용박람회를 통해 일자리를 얻은 장애인 22명이 취업한 지 20일 만에 무더기 해고를 당했다. 이들은 한달간 무급으로 직무와 상관없는 교육을 강요받은 데다 근로계약서까지 제대로 안내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중증장애인 A씨는 지난 5월 대구시가 주최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대구시 장애인복지관협회가 주관한 장애인 취업박람회에 참여해 꿈에 그리던 직장을 얻었다. 

A씨를 채용한 고속관광버스 기업은 박람회에서 월 200만원의 수입과 하루 5시간 근무, 정규직 신분을 각각 보장해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중증장애인인 탓에 계약직을 전전해야 했던 A씨는 드디어 좋은 조건의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는 기쁨에 가족과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5월24일 진행된 '대구 장애인 채용박람회'의 현장. 출처=대구시 홈페이지

채용박람회와 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이 기업에 채용된 장애인은 모두 22명. 그 중 19명이 중증이었고 시각과 청각,  뇌병변, 지체, 지적장애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일할 기회를 잡았다. 

해당 기업은 이들에게 한달간 대구 직업능력개발원에서 무급으로 교육을 받으면 정식 채용을 진행하겠다고 안내했다.

A씨는 한달간 수입이 없다는 사실에 불안했지만 정규직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이 흔치 않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무급 교육을 받아들였다. 

불안은 점점 현실로 드러났다. 한달간 받은 교육은 채용 직무와 상관없는 텔레마케팅과 컴퓨터 등의 과목으로 구성돼 A씨와 동료는 이수기간 내내 의문을 품어야 했다.

교육이 끝나고 지난달부터 근무를 시작하게 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출근 후 20일쯤 지났을 무렵 집에 있다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회사 담당자는 다짜고짜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아 달라"며 "회사존립이 어렵다”고 유선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전화를 받은 이는 A씨뿐만이 아니었다. 이 기업에 채용된 22명 모두 한순간에 일방 해고를 통보받았다.

A씨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기업 측에 항의했다. 이에 기업이 내민 건 해고를 당하기 열흘 전 작성한 한 장의 계약서였다. 이 계약서에는 시급 6470원(최저)을 받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고, 수습기간은 6개월이며 8시간 근무를 한다는 등의 조건이 안내돼 있었다. 채용할 때 내걸었던 월 200만원은 온데간데없는 것도 분통이 터질 일인데, 계약서상으로는 수습기간이 적용돼 해고에 맞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지난 5월 박람회를 통해 장애인을 채용한 대구 소재 고속관광버스회사가 제시한 근로계약서. 장애인 해고 열흘 전에 작성된 이 계약서에는 수습기간과 최저 시급이 명시돼 있다.

중증 장애인이 상당수였던 직원들은 계약 당시 해당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A씨의 동료 B씨도 “종이를 내밀며 형식상 쓰는 것이라고 일러주고는 바쁘니까 빨리 써내라고 했다"며 "무슨 내용인지 안내도 못 받고 알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B씨는 해고를 통보받을 때도 ‘개인 사정으로 퇴사한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강요받았다고 한다. A씨도 마찬가지 사정이었다고 거든다.

무더기로 해고된 장애인들은 장애인고용공단과 기업 소재 구청 등에 이를 알리고 항의했지만, 해당 기관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는 게 A씨의 전언이다.

그는 “(우리가 출근한 지) 20일 만에 회사 존립이 어려워졌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아 화가 난다”며 “한달이란 기간을 무급(교육)으로 날리고 이제 다시 실업자가 됐으니 우리 가족 생계는 어쩌란 것이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B씨도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일자리를 알아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5월 박람회를 통해 장애인을 채용한 대구 소재 고속관광버스회사가 이들을 해고하면서 내민 문서. 개인 사정으로 퇴사한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강요했다는 게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회사가 한달도 안 돼 어려워졌다니 우리도 당황스럽지만 채용박람회에 참가하는 기업의 재무제표까지 모두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참여기업이 장애인시설을 갖추고 최저임금을 준수하는지는 사전 확인하고 있다”며 “해고를 당한 장애인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구시는 장애인채용박람회에 관내 기업 41곳, 장애인 800여명이 각각 참여해 이 중 100여명이 현장에서 채용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장애인 22명을 해고한 해당 기업은 세계일보가 2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관련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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