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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학문도 변화하는 것… ‘오지 않은 사회’ 연구, 시간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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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9 13:00:00 수정 : 2018-04-25 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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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미래학의 미래
필자는 대학 시절에 산업공학을 공부했다. 학과가 생긴 지 3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곳이 무엇을 공부하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공학과 경영학 사이에서 생산에 관련된 분야를 집중 공부해 공장 운영을 최적화하는 공부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일이었다. 특히 쌍쌍이 만나는 미팅에 가서 산업공학과 다닌다고 하면, 상대방이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학과를 다니면서 계속 들었던 말이, 그것이 무슨 학문이냐. 공학도 아니고 경영학도 아닌 잡탕 학과 아니냐는 말이었다.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학문의 탄생

나는 프랑스에 유학을 가면서 컴퓨터 분야를 알게 돼, 컴퓨터 분야로 전공을 바꾸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에 돌아오니 대학에서 막 컴퓨터학과를 신설하는 중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말했다. 컴퓨터가 무슨 학문이냐. 수학이나 전자공학에서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학과를 만들기까지 할 필요 있느냐는 말도 했다. 사실 그 당시 컴퓨터학과에서 가르치는 교과목을 보면 기존의 수학과 전자과에서 다루는 과목을 조합해 놓은 것이 많았다. 이제 산업공학이나 컴퓨터학과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 됐다.

사전에 의하면 학문(學問, Study, Learning, Discipline)이란 학자들이 연구 활동의 결과를 축적해 놓은 지식체계라고 말한다. 학문은 ‘지식체계’와 ‘연구활동’의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학문에는 이때까지 그 분야의 학자들이 발견하고 축적해 놓은 개념과 연구방법론이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축적된 지식과 연구방법을 이용해 새로운 사물에 대한 현상을 이해하든지, 새로운 연구 방법을 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을 학문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학문별로 각각 서로 다른 지식체계가 형성돼 있어서, 동일한 현상과 사물에 대해 학문 사이에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분석적 연구방법을 주로 활용하는 서양 학문에서는 세분화돼 학문 사이에 교류가 적은 단점을 보여 왔고, 그러한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최근 유행하는 학문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학문의 뿌리

학문의 뿌리를 찾는다면 가장 깊은 곳에서 공자(BC 551~BC 479)를 만나게 된다. 그리스 학파보다 100여년 앞서서 인간의 삶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 깊은 성찰과 연구를 하고 제자를 가르쳤다. 공자는 인간의 삶에서 최고의 덕목을 ‘인(仁)’이라고 보았다. 공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를 따르는 삶이 곧 인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상을 제자들과 질문과 토론을 통해 정립했고, 이 대화를 기록한 것이 논어다. 논어에서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 ‘학(學)’이고, 그 지식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질문하는 것이 ‘문(問)’이라고 한다. 논어에서는 널리 배워 뜻을 돈독하게 하며, 절실하게 질문하라고 말한다. 또한 배움만 있고 생각이 없으면 망령되고, 생각만 있고 배움이 없으면 위태롭다는 말도 있다. 실용적인 면도 보인다. 공자 이후로 나타난 맹자 순자 묵자 주자 등 여러 학자도 각기 다른 이론으로 새로운 학문 체계를 구축했다.

서양 학문의 뿌리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BC 470∼BC 399)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플라톤(BC 427∼BC 347)을 거쳐서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에 이르러 학문적 체계가 잡히고 분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학문은 보편적인 진리를 획득하는 것이고, 이것은 각각의 사물 속에서 보편적인 것을 찾아 인식함으로써 획득된다고 봐서, 귀납법적인 연구의 틀을 확립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구한 분야는 생물학, 정치학, 윤리학, 논리학, 형이상학, 역사, 수사학 등 매우 다양하다. 그의 연구는 다방면에 걸쳐 저술로 남아 후대에 각 학문의 뿌리가 됐다. 가장 큰 업적은 동물학과 형식논리학 분야의 연구라 할 수 있다. 그가 사용한 관찰과 이론의 연구는 19세기까지 동물학 연구의 기본 방법론이었다. 철학과 논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삼단논법과 형식논리와 함께 아직도 살아 있다. 결국 오늘의 학문 체계는 그의 학문으로부터 분화돼 오늘에 이르게 됐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연구

과학이란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자연의 원리나 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해석해 일정한 지식 체계를 만드는 활동을 말한다. 과학 연구의 목적은 현상이나 법칙의 발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 발견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사실로부터 귀납적 방법을 써서 결론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이나 관찰로 그 가설을 검증한다. 과학의 연구방법은 16∼17세기에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고 아이작 뉴턴에 의해 그 기초가 확립됐다. 자연과학에서 실험이 가능한 것은 자연현상이 재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자연현상은 동일한 조건을 설정해 놓으면 반복해서 일어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재현 가능한 현상에 한해서만 실험이 가능하고 과학적인 검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거에는 재현할 수 없는 사회현상은 실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근대에는 사회현상에도 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해 정확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됐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에 의해 경제에 과학적 연구방법이 적용되고, 콩트에 의해 자연과학적 방법을 모방한 실증철학이 제창됐다. 이리하여 사회현상 연구에 자연과학적 방법을 도입하는 문이 열렸고, 사회과학이라는 말이 통용되게 됐다.

◆미래 시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미래학

나는 17년 전에 21세기는 바이오와 정보기술(IT), 뇌과학이 결합되는 분야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연구를 하는 바이오뇌공학과를 신설해 21세기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생물학, 전산학, 전자공학, 의학자, 뇌과학자들이 모여서 함께 연구하고 교육해야 했다. 이 제안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생물학과 전자공학이 만나서 무슨 학문이 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과가 만들어졌다. 17년이 흘렀다. 이제는 융합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연구비가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됐다. 아무도 바이오뇌공학이 학문이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없다.

최근 미래학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미래학이 무슨 학문이냐고 묻는다. 우선 연구자가 많지 않고, 지식이 축적돼 있지 않고, 과학적인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뜻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또한 시간이 답을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연극에 3요소(희곡, 배우, 관객)가 있듯이, 학문에도 3요소가 있는 것 같다. 연구대상, 연구자, 연구필요성이다. 미래학도 연구대상이 정해지고 필요성이 존재하는 한, 연구자가 많아지고 지식이 축적돼 사회과학으로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학문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시간에 따라 학문도 변하고 연구 방법론도 변화한다. 결국 학문도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지 말고 미래의 시점에서 보면, 현재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미래학을 공부하는 묘미이면서, 이 묘미가 미래학의 미래다.

이광형 KAIST 바이노및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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