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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 없는 일상의 기쁨… ‘찰나의 역사’ 포착하다

입력 : 2017-08-17 21:03:46 수정 : 2017-08-17 21: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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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두아노 일생다룬 다큐 영화 ‘파리시청 앞에서의 키스’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두 젊은 연인이 길거리에서 키스하고 있는 흑백사진을. 누구는 낭만적 음악이 흐르는 카페 한 쪽 벽의 액자를 통해 처음 봤다 하고 누구는 동네 당구장에 걸린 패널을 본 기억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일상의 삶을 담아낸 프랑스의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가 1950년 6월 12일에 찍은 작품 ‘시청 앞에서의 키스’다.

당시 미국 대중잡지 ‘라이프’에도 사진을 연재하던 두아노는 ‘파리의 사랑’이란 주제로 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요즘처럼 거리의 키스가 흔치 않았던 때라 두아노는 시몽연기학교에서 두 명의 배우를 섭외해 마들렌 사원과 콩코르드 광장, BHV백화점 그리고 ‘세기의 한 컷’을 잡아 낸 파리시청 앞 등으로 옮겨 다니며 촬영했다.


가식 없는 민낯의 일상 속에서 찰나의 드라마를 포착해 내는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의 탁월함은 객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로맨틱한 파리의 변천사를 보는 재미와 함께 인생의 지침서 같은 영양분을 공급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
여러 장의 키스 사진이 함께 실렸지만 사실, 출간 무렵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30년 세월이 지난 1980년에야 이 사진을 포스터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마침내 이 사진은 ‘한 시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보헤미안의 파리’ ‘연인들의 파리’ ‘자유의 파리’ 등 여러 가지 별칭이 따라붙었다.   

10대라면 모두 방에 걸었고, 우디 알렌의 영화에도 나온다. ‘시청 앞에서의 키스’ 사진은 그야말로 어디에나 있었다. 둘러메는 가방에 인쇄되어 나오는가 하면 배지로 만들어졌고, 베개나 쿠션, 침대보로도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몸에 새기는 문신으로도 유행했다. 아직도 휴대폰 케이스 디자인으로 만날 수 있다.

‘맥주 한 모금’을 쓴 문학가 필리프 들레름은 이 사진을 보고, 사진 속 두 연인이 자신의 부모님이라 여기며 ‘시청 앞의 연인’이란 작품을 썼다.   


두아노의 렌즈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기쁨들을 포착한다.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과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식, 그리고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입맞춤까지. 살아 움직이는 파리의 다양한 빛깔을 필름에 담아낸 두아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파리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가 24일 국내 개봉한다.

그의 손녀 클레망틴 드루디유가 연출을 맡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두아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진솔하게 담았다. 손녀는 할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는 물론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편지, 노트, 가족사진, 홈 비디오 등 개인사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공개하며 두아노에 대해 새롭게 조명한다. 어린 일곱 살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던 두아노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윌리 로니스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휴머니즘 사진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풍성한 내러티브로 완성시켰다.

“나는 보여지는 그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의 풍경을 찍는다”고 말했던 두아노가 자신의 인생관을 담아 능동적으로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눌렀음을 알 수 있다. 두아노의 렌즈에는 사랑하는 가족들, 우정을 나눈 이웃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 프랑수아즈 사강, 이자벨 위페르, 쥘리에트 비노슈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평소 모습까지 담겨 있다.


그는 화려한 모습의 유명인이 아닌,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유명인들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능란한 구도와 테크닉으로 시선을 끄는 작품이 아닌, 어느 날 문득 마주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담아 마음을 앗아가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사진은 애틋한 감정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신비한 힘을 품고 있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사춘기를 보낸 두아노의 꿈은 따뜻한 저녁을 먹는 동안 사랑하는 가족들과 수다를 떨며 평범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두아노는 그의 뮤즈이자 평생을 함께한 아내 피에레트르와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파리 시내를 벗어나는 촬영 의뢰에는 좀처럼 응하지 않을 만큼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그 사랑을 사진에 담았다. 가정집을 개조해 작업실로 사용했고 그곳은 딸들과 손주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욕실을 현상실로 이용했는가 하면 식탁은 회의실이 되는 등 가족의 일상은 모조리 두아노의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

영화는 두아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을 겸허하게 주목하면서 파리가 지닌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몹시 사랑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두아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벌이는 수다는 한편의 드라마가 되어 관객들을 만난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그의 작품들과 일상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는 객석에 흐뭇함을 선사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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