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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日 비행기 몰고 탈출한 항일투사…또 한 명의 '잊혀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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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7 14:46:37 수정 : 2017-08-17 14: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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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독립유공자 신청에서 ‘입증자료 부족’으로 8번 탈락/백부의 항일 공적 기리기 위한 63살 조카의 외로운 싸움 / “항일운동을 하신 백부의 공적을 후손이 일일이 찾아 제시해야 하는 사실이 서글펐다”
일본군의 비행기를 몰고 중국으로 탈출한 뒤 항일운동을 벌인 임도현(앞줄 가운데) 비행사로 추정되는 사진. 임씨의 조카 임정범씨가 중국 류저우신문사 편집장을 통해 입수했다. 
임정범씨 제공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며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다”고 덧붙였다.

17일 제주에 사는 임정범(63)씨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반가웠지만, 한편 착잡했다”고 말했다. 그의 큰아버지가 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으로 탈출해 항일운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임도현(1909∼1952) 비행사지만 여전히 ‘잊혀진 영웅’이기 때문. 임씨의 백부는 지난 14년간 8번의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했다. 임씨는 “큰아버지는 항일을 하는데 결혼을 하면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결혼도 하지 않았다”며 “자식이 없는 백부님의 명예회복을 위해 조카인 제가 나섰지만, 번번이 인정을 받지 못해 면목이 없다”고 토로했다.

임도현 선생은 1931년 12월 일본 도쿄 인근의 다치카와 비행학교에 다니던 중, 비행훈련 과정에서 동료 6명과 함께 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했다. 도쿄에서 출발해 제주도를 거쳐 상하이까지 약 1780㎞를 날아갔다. 그는 비행 도중 고향인 제주 조천읍 와흘리 상공에서 비행기를 선회하며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떨어뜨려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상하이에 도착한 그는 상하이외국어학교와 류저우(柳州)육군항공학교, 육·해군대학교 등에서 차례로 수학한 뒤 중위로 임관해 쓰촨(四川)성 중경중앙군사정부 직속부대에 소속돼 장제스를 보좌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선생은 1934년 만주의 소만 국경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왼쪽 머리에 총을 맞는 큰 부상을 입었으나 상하이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는 1934년 친분이 있던 조선인의 밀고로 상하이 일본영사관에 붙잡혀 강제로 일본에 송환됐지만 다시 탈출해 제주도로 건너왔다. 임 선생은 고향 마을에서도 공출과 징병 거부 운동을 벌이고, 중국으로 빠져나가려다 2차례나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52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이런 내용은 제주 4·3사건 당시 소개작전으로 집이 모두 불에 탈 때 임 선생의 어머니가 겨우 건져낸 기록문건(자필 이력서)에 담겨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임도현 선생이 쓴 자필 이력서의 일부
2004년 조카 임씨는 이 같은 백부의 항일 업적 자료를 토대로 처음으로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자료 미흡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보훈처와의 외롭고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그는 “2005년 심사 때는 사전 독립유공자 포상자료 검토과정에서 한 심사위원이 백부가 직접 쓴 자필이력서에 대해 ‘너무 황당하다. 정신병자가 쓴 글’이라고 치부했다”며 “백부가 정신병자 취급을 받은 것에 격분해 자료 수집을 위해 더욱 발벗고 나서게 됐다”고 주장했다.

임씨는 지금까지 중국, 일본, 대만,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등 백부의 자료를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항일운동을 하신 백부의 공적을 후손이 일일이 찾아 제시해야 하는 사실이 서글펐다”며 “더군다나 자료를 찾아다 줘도 계속 명분 없이 탈락시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다. 이어 “백범 김구 선생의 기요비서(機要秘書)를 역임한 김우전 애국지사께서도 ‘일본강점기에 비행기를 가지고 중국을 갔다면 그건 (당연히) 독립운동’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억울해했다. 임 선생의 독립유공자 신청이 계속 인정되지 않자 2012년에는 제주보훈지청장 출신 이대수씨가 “안타깝다. 그런 분이 안 된다는 것이 이해 할 수 없다”며 대신 심사에 올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탈락이었다.
 
제주시 조천읍에서 발간한 마을지의 인물목록에서 임도현 선생에 대해 ‘항일, 공출, 부역, 징용 일체거부투쟁’을 한 인사로 기록하고 있다.
임 선생의 항일 공적은 왜 인정받지 못할까. 보훈처는 임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그가 직접 쓴 기록문건(자필이력서)이 전부라 이를 뒷받침할 공신력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훈처 관계자는 “일본 비행기를 몰고 망명을 했다면 당시 엄청난 사건이었을 텐데, 독립운동진영과 중국, 일본 정부 등 어느 곳에서도 이를 기록한 문서를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지난 10여년간 백부의 자료를 찾아다닌 임씨는 답답해했다. 그는 백부가 다치카와 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을 받던 중 중국으로 도항한 사실이 명시된 1936년도 조선총독부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소의 판결문과 백부의 이름이 적힌 일본 경시청의 ‘요시찰 비밀감시목록 선고비 1199호’ 등의 문서를 찾아내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한 중국 류저우신문사 편집장을 통해 백부의 중국 류저우육군항공학교에 있을 당시 사진자료를 어렵게 구해, 사진 속 인물이 백부임을 고령의 마을 주민 대부분이 확인, 서명까지 받았지만 보훈처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백부가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이동할 당시 고향 상공에서 2∼3회 선회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가 떨어뜨린 보따리를 주워 전달한 주민들의 증언도 참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임씨는 전했다.
2009년 임도현 선생의 머리 총상을 확인하기 위해 유해를 직접 확인하는 모습.
임씨는 일본군과의 전쟁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는 기록문건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2009년에는 제주대 법의학 교수팀과 언론사, 도의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백부의 유해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제주대 법의학 교수팀은 “유골을 검색한 결과 두개골 좌측 측두골 부위에 0.5∼0.7㎝가량의 천공흔(구멍이 뚫린 흔적)이 관찰됐다”며 “손상 형태로 미뤄 총상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서를 냈지만 이마저도 심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대한민국 항공역사 전문가로 2012년에는 임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책 ‘항공독립운동과 임도현 비행사’를 낸 국방정신전력원(국방부 직할부대) 이윤식 연구원은 “임 선생은 일본 경시청으로부터 비행술을 익힌 자로서 일본에 위해를 가할 인물로 감시를 받았다. 제주도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고문을 받았다는 증언과 자료도 있다”며 “임 선생의 행적에 대해 임정범씨가 찾아낸 자료들만으로도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고 임씨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 연구원은 “임 선생의 삶을 볼 때 독립운동의 의지가 있었고, 활동 흔적도 보이지만 엄격한 검증잣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보훈처는 유족 측이 지금까지 발굴한 관련 자료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원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부의 항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임정범씨가 자비로 조성한 ‘임도현 항일자료 기념관’
현재 정부 발굴 독립유공자 포상비율은 전체의 약 95%. 2005년부터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을 운영하며 독립유공자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보훈처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임씨는 지금까지 직접 발품을 팔며 백부의 자료를 수집해오는 과정에서 관계 기관의 협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독립운동 대부분이 비밀리에 진행됐기에 백부님의 항일 행적이 담긴 공신력 있는 문건을 찾는 데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며 “결국 백부님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제가 찾은 자료로는 부족하고 추가 자료발굴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자료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어딘가엔 있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적극 조사에 나서서 백부님이 ‘잊혀진 영웅’으로 남지 않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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