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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으로 휴가를 떠날 때면 미시령 길과 한계령 길을 골라 가는 맛이 있었다. 미시령 터널이 생긴 뒤론 그런 재미도 포기하고 무조건 미시령 터널로 달렸다. 굽이굽이 절경을 감상하며 힘겹게 올라간 미시령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휴게소는 문을 닫았고 그 많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 미시령과 쌍벽을 이루던 한계령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미시령과 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 관광객들이 고속도로를 따라 총알같이 지나가는 바람에 오색지구 주민들이 아우성이고 한계령 휴계소 손님도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다. 길이 인심을 바꿨다.

10여년 만에 가본 제주도 성산일출봉은 좋았다. 푹푹 찌는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도 여전했다. 제주 일경(一景)의 풍경은 그대로였으나 입구는 옛날 기억과 너무 다르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즐비하고 상점 식당에 붙어있는 안내문 글씨는 죄다 중국어다.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매상이 줄었을 텐데도 식당 주인의 표정은 밝다. “한국 관광객들이 붐비니까 이제 진짜 관광지 같다”며 웃었다. 성산일출봉 근처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던 제주도 주민들도 다시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이 인심을 바꿨다.

지구촌 곳곳의 관광지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유럽 관광지에서 ‘관광 반대’ 시위가 거세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대형 호텔, 레스토랑 때문에 주민이 운영하는 소형 상점·식당이 밀려나고 소음과 쓰레기로 고통받고 있다. 일반주거지역이 관광지화되는 ‘투어리스티파이(Touristify)’와 지역 상업화로 거주환경이 악화돼 주민들이 밀려난다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합성어인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종로구가 대표적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피해지역인 북촌 한옥마을, 이화동 벽화마을, 세종마을의 실태조사에 나서기까지 했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는 돈 냄새가 아닌 사람 냄새, 마을 냄새가 나야 한다. 관광과 삶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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