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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국제금융도시 홍콩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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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4 23:18:51 수정 : 2017-08-14 23: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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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홍콩의 밤은 어김없이 화려한 야경과 스카이라인을 뽐냈다. 높낮이와 모양이 제각각인 37개의 빌딩은 음악에 맞춰 춤추듯 레이저 불빛을 쏘아올렸고 네온사인들은 번갈아 반짝였다. 매일 밤 8시 빅토리아 항 고층빌딩 사이로 약 15분간 펼쳐지는 홍콩의 야경 레이저쇼 ‘심포니 오브 라이트’다. 2004년 4400홍콩달러를 들여 홍콩 관광진흥청이 개발한 이 쇼는 4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한다.

같은 시간 홍콩 시내 빌딩 숲 사이사이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노동자들과 구걸 중인 부랑자들이 뒷골목을 채웠다. 홍콩 섬 중심부에 위치한, 18구 중 가장 평균 소득이 높다는 완차이 지역 상점가를 걸었다. 번쩍번쩍한 야경을 뒤로하고 다닥다닥 붙은 낡고 좁은 주택가 건물이 나타났다. 해진 옷차림에 무표정한 얼굴을 한 주민들은 명품 쇼핑백을 든 여행자들과, 시장 상인의 리어카는 한쪽에 즐비하게 주차된 고급 외제차들과 묘하게 뒤섞였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
지난달 중순 한류박람회 출장 차 방문한 홍콩은 그런 곳이었다. 아시아의 뉴욕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화려한 국제금융도시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를 자랑한다. 현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지난 10년 동안 실질 임금은 3% 늘었는데 집값은 3배나 뛰었다. 내륙 부자들이 홍콩 부동산을 사들이면서다. 10평 남짓한 원룸 월세가 중심부는 430만원대, 외곽으로 가도 200만원 수준. 테슬라를 비롯해 BMW, 벤츠 등 고급 외제차들만 거리에 보이는 건 값비싼 주차비와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는 부자들만 차를 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화려한 삶을 영위하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아남으려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매일 밤 전 세계 큰손들의 천문학적인 금융거래가 오가는 금융도시이지만 정작 상점에서의 카드 결제와 인터넷뱅킹조차 어색한 ‘핀테크 후진국’인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이번 방문에서도 삼성페이 등의 모바일결제는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카드 결제 한번 하려 해도 한참을 기다려 단말기를 작동하고 수기로 서명하는 등 번거로움이 따랐다. 중국 본토에서 수년간 근무하다 이번에 홍콩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결제를 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며 “홍콩에 와 보니 대부분 현금거래를 하고 모바일결제는커녕 인터넷뱅킹도 잘 모르는 분위기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홍콩의 두 얼굴을 보며 조심스레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건 기우일까. 점점 더 커져가는 빈부격차, 잔뜩 거품이 낀 부동산 경제를 잡지 못하고 있는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상위 0.47%가 총 금융자산의 16.3%를 보유하고 있고, 이들이 가진 부동산자산 평균(28억6000만원)이 가계 전체 평균(2억5000만원)의 약 11배인 것이 우리 현실이다.

국제금융도시 홍콩은 핀테크 후진국이라는 굴욕을 안았다. 우리는 아마 핀테크는 아니겠지만 다른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을 겪을 것이다. 홍콩에서 만난 화려함과 남루함, 이를 견뎌내는 힘겨운 표정들 모두가 남일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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