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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이여 다시 한번”… 마지막 불꽃 태운다

입력 : 2017-08-14 06:00:00 수정 : 2017-08-13 22: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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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퀸’서 스피드스케이팅에 도전하는 박승희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 박승희(25·스포츠토토)는 집에 간직한 올림픽 메달만 5개다. 특히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2관왕(1000m·3000m 계주)에 오르며 전성기를 달렸다. 이듬해엔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23·연세대)를 제치고 대한체육회 체육대상까지 거머쥘 만큼 전국적인 인기도 얻었다.

선수로서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하자 권태기가 찾아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처음 잡은 뒤로 쉴 틈이 없었다. ‘쇼트트랙 강국’인 한국에서 동료 선수들과 다퉈야 하는 일도 심적 부담이 컸다고 한다. 이에 2014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선수권 500m에서 우승한 뒤 화려한 은퇴를 선언했지만 박승희에게 스케이트는 ‘운명’이었나보다. 주변의 권유로 은퇴 뒤 5개월 만에 신어 본 스피드스케이팅용 ‘클랩(clap) 스케이트화’가 발에 꼭 맞았다. 그제야 ‘아직은 빙상을 떠날 수 없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박승희(스포츠토토)가 14일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전환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지난 14일 태릉선수촌 실내 빙상장에서 만난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은 장비부터 훈련 방식까지 모두 다르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쇼트트랙보다 근력과 지구력을 강도 높게 향상시켜야 하는 종목이다.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하면서 완전히 신인의 자세로 돌아갔다”고 털어놓았다. 쇼트트랙은 트랙 길이가 111.12m인 반면 스피드스케이팅은 400m에 달한다. 빙상을 부술 듯 발을 역동적으로 뻗는 동작은 스피드스케이팅의 백미지만 그만큼 남다른 훈련량을 소화해야만 성적을 낼 수 있다. 박승희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다 보니 몸이 전체적으로 커져서 사실 속상하다. 예전에 헐렁했던 옷마저 이제는 몸에 딱 붙는다. 하지만 운동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불편해도 참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힘든 운동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어서다. 박승희도 스케이트를 이렇게 오랫동안 붙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피겨스케이팅 관련 만화를 인상 깊게 본 어머니 이옥경(50)씨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박승주(27·은퇴), 박승희 자매를 과천 빙상장으로 보냈다. 그런데 정작 빙상부에서는 화려한 피겨복 대신 스케이트복을 입히고 온종일 트랙만 돌렸다.

 
박승희(스포츠토토)가 11일 은퇴 무대인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치겠다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지도교사는 “재능이 많은 아이들이니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키워보겠다”고 나섰고 이미 피겨보다 스피드스케이팅에 재미가 붙은 자매를 말릴 수는 없었다. 여기에 막내아들 박세영(24·화성시청)까지 누나들을 따라 빙상에 뛰어들면서 이들은 ‘빙상 삼남매’로 유명해졌다. 소치에선 한국 최초로 쇼트트랙 박승희와 박세영, 스피드스케이팅 박승주 삼남매가 나란히 올림픽 대표로 출전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이 중에서도 박승희는 홀로 메달 3개(금2·동1)를 수확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현재 맏언니 박승주는 은퇴했고, 박세영은 쇼트트랙 대표팀 선발전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평창을 바라보는 건 박승희 혼자다. 박승희는 오는 10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선발전을 목표로 하루 7~8시간 웨이트 트레이닝에 진력을 쏟고 있다. 박승희는 “평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메달을 딴다면 세계 최초로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메달을 모두 딴 선수가 된다.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어진 상황에서 매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 박승희는 최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쇼트트랙과 달리 스피드스케이팅에선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2014년 10월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1000m에서 ‘빙속 여제’ 이상화에 이은 준우승을 차지하며 종목 전환 3개월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러나 당시 기록은 1분21초16으로 세계 정상권과는 5~6초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박승희는 지난해 1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선발전 여자 1000m 2차 레이스에서 1분19초35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 1월에는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일반부 1000m에서 1분19초84의 기록으로 대회 3연패를 달성하며 이 종목 국내 최강자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박승희는 “솔직히 종목을 전향하지 않고 쇼트트랙을 계속했다면 지금은 소치 때보다 더 잘 탔을 것 같다.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 재미 없는 것은 못하는 성격이다. 새 기술을 익히고 경쟁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며 밝게 웃었다.

평창이 정말 마지막인지, 더 볼 수는 없느냐고 묻자 그는 “무조건 평창이 은퇴 무대”라고 잘라 말했다. 박승희는 평창 이후 디자이너로서 제2의 삶을 펼칠 계획이다. “메달 색깔에 의해 환호의 크기가 달라진다. 단순한 성적만 보고 선수의 면면을 쉽게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선수들 모두 성적과 별개로 죽을 만큼 힘든 훈련을 참아내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웬만한 사명감이 없이는 하지 못하는 일이다. 선수들의 노력에 아낌없는 응원을 부탁드린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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