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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썰전이 실전으로" 한반도서 '위험한 게임'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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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2 11:05:00 수정 : 2017-08-12 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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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의 넓은 마당에 사나운 맹수 A와 B가 함께 지내고 있다. 둘은 서로를 매우 싫어해 마주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린다. 마당의 서쪽에 지내던 A가 반대편에 머물고 있던 B를 향해 돌을 던지며 신경을 건드리자 B는 A 주변을 맴돌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B의 ‘신경 건드리기’를 참고 또 참던 A는 어느 날 “이대로는 못참겠다”며 그동안 숨겨왔던 이빨과 발톱을 모두 드러내며 B를 향해 달려들고, 아름답고 평온했던 마당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다. 

화성-1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지난달 28일 자강도 무평리에서 발사되고 있다.
태평양이란 거대한 바다를 사이에 둔 북한과 미국의 거친 설전(舌戰)이 실전(實戰)으로 번질 조짐이 강해지고 있다. 지난달 말 북한의 화성-1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차 시험발사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자 북한이 정부 성명까지 발표하면서 ‘전면 배격’을 선언했다. 이후 미국과 북한이 말폭탄을 주고받더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나오자 북한 전략군 사령관 김락겸이 등장해 화성-12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3400여㎞ 떨어진 괌을 포위사격하겠다며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관영 매체를 통해 공개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와 김정은 두 ‘스트롱맨’의 말싸움은 미사일이 태평양 상공을 오가는 진짜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 北은 왜 ‘화성-12 괌 공격’ 카드 뽑았을까

북한이 정말로 괌 인근 해상으로 화성-12를 발사할까. 미국 영토 코앞에 탄도미사일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아는 북한이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할 리 없다는 관측도 있지만 실제 발사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정은 체제가 독재정권이라고 하지만 인민들에게 공개된 사안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통치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제국주의 침략 기도에 맞서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통치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화성-12를 괌 인근으로 발사하거나, 최소한 발사 원점과 괌을 컴퍼스로 찍어 그린 동심원상의 특정 지점을 맞히는 오프셋 사격(off-set)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5월 14일 신형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5월 1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기념 열병식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북한군은 전략군 열병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공개했다. 이후 열병식에 등장했던 북극성-2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화성-12, 스커드 개량형 대함 탄도미사일, KN-06 지대공미사일, 신형 대함 순항미사일, 화성-14를 동해상으로 잇달아 쏘아올렸다. 일련의 미사일 발사 시도를 통해 김정은은 미사일 타격권을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미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그런데 화성-14 2차 시험발사 직후 김정은이 선택한 카드는 화성-12의 재발사였다. 순서대로라면 열병식에 등장했던 미사일 중 유일하게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트레일러 탑재 미사일을 공개해야 할 시점에서 화성-12를 선택한 것이다.

북한은 왜 화성-12 재발사 카드를 다시 꺼냈을까.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김정은의 미사일 창고에서 당장 꺼낼 수 있는 신형 미사일이 없다는 것이다. 김일성 생일 열병식에 등장했던 트레일러 탑재 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ICBM급 미사일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북극성-2와 같은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을 개발했지만 이를 ICBM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단기간에 개발해 기술적 검증을 할 수 없다. 반면 화성-12는 최소 4차례 이상 시험발사를 실시해 기술적 검증을 끝냈다. 화성-12 추가 발사를 통해 실전배치를 선언하면 화성-14의 1단 추진체가 화성-12라는 측면에서 화성-14의 신뢰성도 향상된다.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평양에서 열린 군중대회에 참가한 북한 주민들이 반미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화성-14 3차 발사 시기를 늦추면서 화성-12 괌 포위사격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말 2차 시험발사를 통해 최대 사거리를 과시했지만 미국의 태도 변화는 없었다. 미국을 압박하려면 비행거리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남은 것은 섭씨 7000~8000도의 고열을 견디는 대기권 재진입체 기술 검증이나 핵탄두 공중폭발 시험 정도다. 둘 중 하나라도 성공하면 미국 본토 공격이 성공할 가능성은 급상승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 카드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기술검증이 100% 이뤄지지 않아 3차 발사까지 시간을 벌면서 대미 압박을 유지하고자 화성-12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대기권 재진입체 기술 확보 여부에 대한 부분을 ‘전략적 모호성’의 영역으로 남겨 불확실성 극대화에 의한 핵억제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정교해지는 北전략, 韓 당해낼 수 있나

북한이 화성-12로 괌을 포위사격하겠다는 위협은 지금까지의 북한발(發) 미사일 위협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직결될 수 있다.

김정은 체제가 본격화된 2014년 이래 북한의 탄도미사일 전략은 도박판에서 말하는 올인(All-In)식이었다. 가지고 있는 판돈을 모두 걸고 승부를 펼치거나 허세를 부리는 등의 방법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김정은의 전략이 아버지인 김정일보다 치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우주 개발을 명분으로 일본 본토를 가로지르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에 주력했다. 미국이 표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출구전략’을 확보해 위기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 반면 김정은은 마구잡이식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국과 미국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미사일 위협을 가하다보니 압박이 분산돼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그저 많이, 멀리 쏘아올리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전략적 효과도 반감됐다.

김일성 생일 105주년 열병식이 열린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나타난 화성-12 중거리탄도미사일
그런데 이번엔 화성-12에 의한 괌 포위사격 계획을 공개했다. 괌은 B-1B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한반도에 전개하는 미군 전략자산이 대거 집결해있다. 장거리 정밀유도무기를 포함해 56t의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B-1B는 올해 들어 한반도에 정기적으로 출격하면서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화성-12가 괌을 위협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가 있지만 화성-12를 100% 격추한다는 보장은 없다. 위협이 해소될 때까지 미군 전략자산은 괌에 발이 묶이거나 최악의 경우 괌에서 일시 철수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바로 괌 주둔 미군이 한반도로 출동하기 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 북한에 대한 공격 시도를 못하도록 하는 ‘거부적 억제’ 전략이다. 손에 잡히는 장난감이란 장난감은 닥치는대로 집어던지며 화를 내던 철부지가 어느 순간 예리한 송곳 하나만 들고 나타나 상대를 위협하는 것처럼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전략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한층 정교해진 셈이다. 만약 북한 전략군의 모든 탄도미사일들이 이처럼 정교하고 세심하게 기획된 운용전략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 냉전 종식 이후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운용전략에서 발전이 없었던데다 즉흥적이고 불확실성이 큰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이 북한의 도전을 단번에 꺾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지만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 대응 역시 오락가락한다. 북한이 처음 괌 포위사격을 언급한 9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안보리 제재 결의안 채택 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내부결속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전략군 김락겸 사령관이 10일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공개하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하고 합참 명의의 경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180도 바뀐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발언도 하루만에 “상황이 엄중하고 심각해진다고 보고 있다”며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한다는 뉘앙스로 달라졌다. 북한의 속셈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는 상황에서 체제의 생존을 걸고 국가적 차원에서 ‘미제와의 판갈이 결전’에 나선 김정은 체제를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 군인들이 11일 반미 군중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화성-12 괌 포위사격 계획을 이달 중순까지 수립해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발사명령을 기다리겠다고 공언했다. 오는 21일부터 실시되는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전후로 화성-12가 태평양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목격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화성-12 발사 직후 발생할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해 대응 전략을 만들어뒀을 것이다. 연평도 포격을 통해 한미 동맹 체제의 빈틈이었던 국지도발 대응의 허점을 정확히 찌른 북한으로서는 휴전선 일대의 장사정포와 후방의 전술미사일, 무인기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준비도 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결전태세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미사일 단추를 맡겨도 되겠나”는 말까지 나오는 미국과 북한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화 제의에 호응하기를 기다릴 뿐인 우리나라가 ‘위험한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행보를 꿰뚫어 보는 전략가가 한 명이라도 정부 내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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