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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에게 태극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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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1 23:18:44 수정 : 2017-08-11 23: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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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尼 전통의상 ‘바틱’ 애국심의 상징 / 美 이민간 선배, 국기게양 잊지 않아 / 흐트러진 국력 결속시키는 힘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 국영석유공사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이 있다. 이 건물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1997년 7월 태국에서 촉발된 아시아 외환위기는 삽시간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덮쳤다. 외환위기 해일은 곧 한국에까지 몰려왔다. 말레이시아는 1998년 9월 69개국이 참가하는 영연방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비영어권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초의 영연방 체육대회였다. 페트로나스 빌딩도 이때 건설됐다.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정부가 앞장서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온 국민을 독려해 외환위기 한파를 견뎌냈다. 말레이시아발 금모으기 운동의 성공이었다. 서방 기자가 외환위기 속에서 쌍둥이 빌딩 건설을 강행한 이유를 물었다. 마하티르의 답변은 간결했다. “국가위기에는 모든 국민의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국부(國父) 수카르노는 독립 후 국민들의 자긍심과 민족주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전통기법으로 만든 ‘바틱’(Batik) 천 제조업을 적극 육성했다. 수카르노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집권한 수하르토도 300여 종족이 600여 지역 언어를 상용하는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 인도네시아를 한데 묶는 방안으로 바틱을 선택하고, 국가 공식행사 때 서양식 정장 대신 바틱 셔츠를 착용했다. 1971년에는 바틱을 공무원 복장으로 규정해 국민들의 일체감을 고취시켰다. 이로써 바틱 산업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고, 2009년 10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이어졌다. 이 나라 최초의 국민 직선 대통령이 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2010년 매년 10월 2일을 ‘바틱의 날’로 제정하면서 모든 국민이 매주 한 번씩 바틱을 착용하자고 국민제안을 했다. 유도요노의 후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6년 매주 금요일을 전 국민이 바틱을 입는 날로 지정했다. 바틱은 전통으로부터 모든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국가사랑’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자바 고대 왕실에서 왕족들의 의상으로 태어난 바틱은 장인의 예술혼이 담기고 인도네시아인들의 인내심과 손재주로 전승돼 오늘에 이르렀다.

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동남아학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선배 한 분이 일전에 메일을 보내왔다. “후배님, 시골에 살면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고요. 벌써 오십이 넘은 아들이 처음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책상 앞에 늘 태극기를 걸어놓더라고요. ‘흠, 녀석이 뿌리는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구나’ 하고 흐뭇했지요. 인도네시아에 8년 반을 살면서 우리나라의 국경일에는 꼭 태극기를 내걸었답니다. 한쪽엔 태극기, 다른 한쪽에는 인도네시아 국기를 함께 게양하면서 애국심의 발로인 양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런데 그 태극기를 이곳 미국에서는 선뜻 게양하기가 힘듭니다. 집집마다 일 년 열두 달 성조기를 게양하는 그 기세에 눌려 기가 꺾인 것 아닌가 합니다.” 미국을 하나로 만든 것은 186명 주민이 멕시코 정규군 1000명과 싸워 모두 옥쇄(玉碎)한 1836년의 알라모 전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조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 한반도 주변의 정치상황은 북핵 문제로 조선말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의 소란함과 일부 국가 지도급 인사들의 일탈 행위가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어디 한군데 마음을 편히 둘 데가 없다. 어떻게 국민의 흐트러진 마음을 한데 모을 것인가. 1997년 말 절명에 가까운 외환위기 때 박세리의 골프공 하나로 우리 국민 모두는 일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금 모으기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제 곧 15일 광복절이다. 우리 모두 태극기를 내걸어 한민족의 저력을 재확인하자.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산골 마을에까지 달자. 수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해수욕장 인근에도 높이 달고,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손에도 태극기를 쥐여주자. 태극기의 물결은 계속되는 국가적 악재를 딛고, 모든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아 일체감을 조성하는 순기능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동남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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