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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오른손잡이 세상… 여전히 ‘불편한 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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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1 19:12:35 수정 : 2017-08-11 19: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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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국제 왼손잡이의 날 / 기계·운동·악기 등 오른손 위주 / 무심코 잔 건네면 “예의 없다” 타박 / 생활 불편… 따가운 시선 시달려 / 억지 교정… 정서적 부작용 겪기도 / “타고난 것… 그대로 두는 게 좋아”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이적과 김진표가 결성했던 ‘패닉’이란 그룹이 1995년 발표한 ‘왼손잡이’라는 노래의 일부 가사다. 가사대로 왼손잡이는 오랜 세월 소수자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며 억압받아왔다. 언어에서부터 차별이 발견된다. ‘왼’의 원형인 ‘외다’의 사전적 정의는 ‘물건이 좌우가 뒤바뀌어 놓여 쓰기에 불편하다’, ‘마음이 꼬여 있다’이다. 반면 오른손의 ‘오른’은 ‘옳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외국어도 비슷하다. 라틴어에서 왼손잡이를 뜻하는 ‘sinister’는 ‘흉하다’, ‘불운’ 등과 동의어인 데 비해 오른손잡이를 일컫는 ‘dexter’는 ‘알맞다’, ‘능숙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영어의 ‘right’ 역시 ‘옳다’, ‘권리’ 등 긍정적 의미를 지닌 반면 ‘left’는 ‘무시된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으며 야구나 권투에서 왼손잡이를 뜻하는 ‘사우스포’(southpaw)의 ‘포’(paw)도 손을 비하하는 단어다.

흑인이나 여성, 장애인 등 다른 소수자들이 일찍이 조직화해 자신들의 권익 투쟁을 벌여온 반면 왼손잡이들은 그 역사가 짧다. 그런 의미에서 왼손잡이들에게 8월13은 특별한 날이다. ‘국제 왼손잡이의 날’이기 때문. 1932년 국제왼손잡이협회를 창립한 미국인 딘 캠벨의 생일이 8월13일이었기에 1976년부터 8월13일을 국제 왼손잡이의 날로 정했다. 1992년부터는 해마다 공식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왼손잡이들은 생활 곳곳에서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회사원 김모(32·여)씨는 “대학생 시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할아버지 손님에게 왼손으로 주전자를 잡고 물을 따르다가 ‘왜 왼손으로 물을 주느냐’며 타박을 받은 적 있다. 내겐 왼손이 편해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억울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오른손으로 물을 따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회사원 박모(30)씨도 “어릴 적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나를 보고 할머니가 어머니께 ‘가정 교육을 어떻게 시킨거냐’고 구박한 적이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급식을 먹을 때 내 자리는 항상 왼쪽 맨 구석이었다. 오른손잡이 친구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회사 회식 때 내 자리는 왼쫀 맨 구석이다. 자리에 상관하지 않고 밥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시선만 따가운 게 아니다. 생활의 불편함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컴퓨터 마우스는 오른손으로 작동하기에 더 편하다. 자동차 기어도 오른편에 있다. 대학교 강의실 책상의 손 받침은 오른쪽에 달려있으며, 카메라 셔터나 지하철역 개찰구도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바이올린이나 트럼펫, 트럼본 같은 일부 악기는 아예 오른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야구나 골프 연습장도 왼손잡이를 위한 사로는 없거나 하나만 마련되어 있기 일쑤다. 왼손잡이가 유리한 것은 야구에서 1루까지 오른손잡이에 비해 2~3걸음 더 가깝다는 것 정도다. 다만 야구 베이스가 홈 기준으로 왼쪽에 1루가 만들어진 것은 오른손잡이들이 더 돌기 편하다는 이유였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왼손잡이는 전 세계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 2013년 갤럽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녀 1200명 중 왼손잡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5%였다. 그중 왼손으로 식사를 한다고 응답한 이는 4%,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고 응답한 사람은 1%에 불과했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왼손잡이가 10% 내외임을 감안하면 선천적 왼손잡이들이 후천적 오른손잡이로 전향한다는 얘기다.

자녀가 왼손잡이면 왼손을 묶어놓고 못 쓰게 하거나 왼손을 쓰려할 때마다 회초리로 때려가며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전향하게 하는 일은 지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육아 관련 온라인 카페에는 ‘우리 아이가 왼손잡이인데 글씨를 오른손으로 교정시켜 줘야 할까요?’라며 묻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6살 난 아들을 둔 주부 박모(37·여)씨는 “아들에게 글씨를 가르치는데 왼손으로 연필을 잡더라. 왼손잡이로 살기엔 불편한 게 많을텐데 고민이다. 글씨 교정 학원에라도 보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억지로 교정하는 것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회사원 남모(32)씨는 “어릴 적 골방에 갇혀 오른손으로 글씨 쓰기 연습을 했다. 오른손으로 쓰다 불편해 왼손으로 연필을 옮기면 어머니가 손등을 찰싹 때리곤 했다. 강제로 고친 결과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게 됐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좁고 어두운 공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억지로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는 것에 대한 위험을 지적한다. 분당 서울대병원의 유희정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왼손잡이는 타고나는 것이라 바꿀 수 없다. 왼손잡이 아이에게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젓가락질을 하라고 하면 수행능력이 떨어져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고,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증 등 정서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읽기 능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면서 “부모들은 왼손잡이인 자녀를 그대로 두는 게 제일 좋다”고 조언했다. 서천석 행복아이연구소장도 “왼손잡이를 ‘비정상’으로 보는 인식이 사라져야 한다. 아울러 왼손잡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시설 및 제도 등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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