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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으로 처형된 조선인 홍사익… 그를 위한 변명

입력 : 2017-08-12 03:00:00 수정 : 2017-08-11 2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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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육사 나와 일본군 중장까지 오른 홍사익 / 동기의 광복군 합류 권유 거절… 전선에 부임 / 뒤로는 일본군 내 조선인·독립군 가족 지원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이진명 옮김/페이퍼로드/3만8000원
홍사익 중장의 처형/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이진명 옮김/페이퍼로드/3만8000원


일본군 중장 계급의 홍사익(1887∼1946)은 필리핀 미군포로수용소 책임자였다가 전후 B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그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등재됐다. 하지만 그의 행적에 대한 후세 평가는 엇갈린다. 몸은 일본군에 담았으나 마음은 조선에 있었고 동족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임시정부나 광복군에 가담하지 않았다 해서 친일파로 단죄되었지만 조선 독립을 후원한 인물이었다. 후세대 사람들이 과연 홍사익을 친일파로 단죄할 수 있을까. 그를 단죄한 후세대 사람들 중에는 친일파 후손도 섞여 있을 것이다. 또 일부는 해방 이후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지금도 정·관·재·언론계를 주무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홍사익의 사례는 일제강점기 조선 출신 지식인들의 고민과 행로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일본육사 동기로, 광복군 사령관을 지낸 지청천과 해방을 맞을 때까지 교분을 이어갔다.

1919년 일본군 중위 때 탈주해 만주로 망명한 지청천은 홍사익에게 독립군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지만 홍사익은 가지 않았다. 일본군 최고위직인 자신이 배신하면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조선인 병사들과 징용 노무자들이 보복당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도쿄특파원 김을한이 남긴 말이다. 홍사익의 이 말에 대해 1991년 언론인 송건호씨는 자신의 출세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친일파의 한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출신으로는 최고위직인 일본군 중장에 오른 홍사익. 일본인 작가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홍사익이 “조선의 독립을 후원한 조선인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페이퍼로드 제공
홍사익은 일본군 내 조선인들은 물론 독립군 가족들의 뒤를 돌봐주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으며 군에서도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혔다. 한국계 일본군 장교들 모임인 전의회(全誼會)에서 낸 회보에는 홍사익을 지지하는 글들이 다수 실렸다. 홍사익과 장교들은 향후 조선의 독립을 내다보면서, 그때를 대비하는 듯한 글들이 다수 보였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렇다고 홍사익의 일본군 행적이 사면될 수는 없다. 속으로 조국의 독립을 꿈꾸고, 봉급을 쪼개 독립군 지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침략자 일본군의 지도급 인사로 ‘내선일체’의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중견 출판사인 야마모토서점을 창업한 사람이다. 저자는 당시 홍사익의 부하 장교였다. 홍사익이 제14방면군 병참총감을 맡고 있을 당시 필리핀에서 함께 복무한 인연이 있다. 하지만 전범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마음속으로 홍사익의 인격을 흠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그때부터 12년 동안 홍사익의 재판기록을 샅샅이 뒤지며, 일본인 관계자는 물론 수차례 한국에 건너와 친지들을 인터뷰했다. 홍사익이 처형된 교수대의 나무 자재가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사역을 나갔던 목공소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앞서 저자는 홍사익의 일대기를 1980년대 초반 문예춘추에서 펴내는 잡지 ‘쇼군!(諸君!)’에 연재했고, 1986년 문예춘추는 ‘洪思翊中將の處刑’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범재판 같은 거대담론은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홍사익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인들의 평가를 받기로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홍사익을 변호했다. 일본군에 남아 있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천황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무인의 길’이라는 홍중장 자신의 의지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홍사익에게는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대한 전범재판 기록을 분석한 결과 미군 재판관이 무리하게 전범으로 몰아갔다고 지적했다. 미군 재판관이 창안한 전범 죄목은 포로 학대였다. 포로로 잡힌 미군을 바닥에서 자도록 했다는 것 등이다.

저자는 “일본인은 스스로 저지른 잔학행위를 모조리 홍중장에게 뒤집어씌운 뒤, 그를 제물로 교수대에 보내고, 자신들은 입을 씻고 모른 체하고 있다고 (한국인들이)말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고 증언했다. 사실 홍 중장은 포로수용소의 명목적 지휘관이었으며, 실권은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전투 현장에서 홍 중장은 일본인과 한국인이기 이전에 무인 그대로였으며, 침착하고 명료하게 전투를 지휘했던 사람이며, 항상 온후한 태도와 이웃에게 따뜻한 상관이었다”면서 “최후의 순간(교수형)에도 염치와 희생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전범재판에서도 단 한마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이는 저자가 평전을 쓴 연유이기도 하다.

책을 펴낸 페이퍼로드 측은 “홍사익이 친일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다만 좁은 의미의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같은 이분법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구한말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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