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개각의 방점은 ‘쇄신’이 아니라 ‘안정’에 찍혀 있었다. 부총리 겸 재무상,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 등 아베정권의 ‘골격’을 이루는 주요 인사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개각이라는 이벤트만 하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냉담했다. 개각 후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2%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특히 가케학원 의혹에 대해 응답자의 83%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답해 여전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
주변국의 기대감을 부풀렸던 고노 다로(河野太郞) 전 행정개혁담당상의 외무상 발탁도 금세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그는 1993년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3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아베정권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지난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017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나 “문재인정권은 박근혜정권 때 일본 정부와 맺은 위안부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역사적 유산’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오히려 고노 담화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싶어하는 아베정권과 마음이 잘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아베정권은 개각이라는 이름으로 겉모습만 살짝 바꿨을 뿐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앞으로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를 목표로 개헌을 추진할 것이고, 위안부 문제 등 과거 일본이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물타기도 계속할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하지만 큰 변수가 있다. 아베 총리가 권좌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의 보장 임기는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통해 3연임에 성공해야 총리 임기를 늘릴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아베 총리가 2015년 ‘무투표 재선’에 성공했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아베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하든 다른 인물이 대권을 거머쥐든 한국은 대비를 잘해 한·일관계와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포스트 아베’ 후보로 불리는 인물 대부분이 우익이거나 자민당 세력이기 때문일까. ‘귀신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속담이 왜 하필 지금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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