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주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사건은 충격적이다. 대장 부인은 “아들같이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안 하느니만 못한 변명이 됐다. 더 놀라운 건 갑질 자체보다 그런 퇴행적 행태가 ‘국민과 함께하는 군’을 앞세우는 21세기 군대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관병 골프병 테니스병 과외병 논문병처럼 신성한 병역의무를 군 간부의 머슴 노릇을 하다 마친 병사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수십년 전 군인들은 ‘군대니까’하고 넘어갔고 사회도 그런 정도에서 용인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부모 세대가 겪은 병폐가 자식 세대에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면 다른 문제다. 사회는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군대는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야 볼 수 있는 과거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
공관병 문제를 포함해 가혹행위 성추행 방산비리 군사기밀 유출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군내 부조리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병영의 장막 뒤에서 오래 묵은 폐단들이다. 곪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터질 때마다 군은 허둥대며 메스를 들었다. 공관병 학대 문제가 불거지자 이번에도 전수 조사와 공관병 제도 폐지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판에 박은 듯한 이런 군의 대응은 두더지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올라오는 두더지 머리를 망치로 두드리면 내려가지만 그때뿐이고 두더지는 곳곳에서 쉴틈없이 튀어 나온다.
원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60만명이 모인 매머드 조직이 엄격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돌아간다고 해도 톱니바퀴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래도 군대는 군대다워야 하고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 사회 각 분야는 치열한 경쟁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데 안보를 책임진 군대만 사회 발전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손가락질이나 받고 있다면 군의 존립 기반을 허물고 안보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정신없이 달려왔어도 병역만은 아직 성역으로 남겨 놓았다. 한쪽에서 병역을 기피대상으로 여기고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려 한다고 해서 국방의무라는 신성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군은 병역의무의 숭고한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군에 쏟아지는 의문과 불신을 걷어내는 대장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게 국군 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군은 먼저 스스로 뭘 바꿔보겠다고 나선 적이 없다. 군부 핵심 사조직 ‘하나회’ 숙청을 비롯한 일련의 군 개혁 대부분의 방아쇠는 외부에 의해 당겨졌다. 군을 바꾸는 일, 이제 제대로 해야 한다. 얼굴의 숯검정은 그대로 둔 채 얼굴을 비추는 거울만 닦고 타는 불은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는 방식으론 ‘가고 싶고 보내고 싶은 군’을 만들 수 없다. 내년이면 창군 70년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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