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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군대니까’는 안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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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07 23:42:09 수정 : 2017-08-07 23: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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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병 머슴으로 부린 갑질 / 병영 장막 속 적폐 중의 적폐 / 여론에 밀려 메스 들었지만 / 두더지게임 될까봐 더 걱정 국가기관 가운데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국민이 직접 경험하는 조직은 군대가 유일하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인 남성 2500여만명 가운데 62만명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군에서 먹고 잔다. 20세 이상 남자 2000여만명 중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왔고 일부는 입대를 앞두고 있다. 군대를 갔다온 예비역들은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군을 속속들이 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많은 것을 직접 겪고 보고 느꼈다. 나도 30여년 전 군 복무의 기억을 더듬어보라고 한다면 3박4일은 자신있다.

박찬주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사건은 충격적이다. 대장 부인은 “아들같이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안 하느니만 못한 변명이 됐다. 더 놀라운 건 갑질 자체보다 그런 퇴행적 행태가 ‘국민과 함께하는 군’을 앞세우는 21세기 군대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관병 골프병 테니스병 과외병 논문병처럼 신성한 병역의무를 군 간부의 머슴 노릇을 하다 마친 병사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수십년 전 군인들은 ‘군대니까’하고 넘어갔고 사회도 그런 정도에서 용인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부모 세대가 겪은 병폐가 자식 세대에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면 다른 문제다. 사회는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군대는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야 볼 수 있는 과거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인사청문회 때 송영무 국방부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가 똑같이 부적격 시비에 휘말렸지만 조 후보자는 사퇴했고 송 후보자는 살아남았다. 그 직후 있었던 한 모임에서 그 얘기가 화제로 오르자 누군가 “40년 군 생활을 한 송영무와 18년 교수 생활을 한 조대엽 중에 누가 더 나쁜 짓을 많이 했을 거 같냐”는 물음을 던졌다. 대답은 만장일치 ‘40년 군 생활 송영무’였다. 그런 대답이 나온 것은 송영무 개인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군에 대한 평판 때문이다. 대학보다는 군에 진흙탕이 더 많을 것이고, 그런 곳에서 몸담고 있다 보면 고의든 실수든 몸에 티끌 하나라도 더 묻혔을 것이라는 얘기다. 공관병 갑질도 방치해온 여러 진흙탕 중의 하나일 것이다.

공관병 문제를 포함해 가혹행위 성추행 방산비리 군사기밀 유출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군내 부조리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병영의 장막 뒤에서 오래 묵은 폐단들이다. 곪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터질 때마다 군은 허둥대며 메스를 들었다. 공관병 학대 문제가 불거지자 이번에도 전수 조사와 공관병 제도 폐지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판에 박은 듯한 이런 군의 대응은 두더지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올라오는 두더지 머리를 망치로 두드리면 내려가지만 그때뿐이고 두더지는 곳곳에서 쉴틈없이 튀어 나온다.

원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60만명이 모인 매머드 조직이 엄격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돌아간다고 해도 톱니바퀴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래도 군대는 군대다워야 하고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 사회 각 분야는 치열한 경쟁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데 안보를 책임진 군대만 사회 발전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손가락질이나 받고 있다면 군의 존립 기반을 허물고 안보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정신없이 달려왔어도 병역만은 아직 성역으로 남겨 놓았다. 한쪽에서 병역을 기피대상으로 여기고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려 한다고 해서 국방의무라는 신성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군은 병역의무의 숭고한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군에 쏟아지는 의문과 불신을 걷어내는 대장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게 국군 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군은 먼저 스스로 뭘 바꿔보겠다고 나선 적이 없다. 군부 핵심 사조직 ‘하나회’ 숙청을 비롯한 일련의 군 개혁 대부분의 방아쇠는 외부에 의해 당겨졌다. 군을 바꾸는 일, 이제 제대로 해야 한다. 얼굴의 숯검정은 그대로 둔 채 얼굴을 비추는 거울만 닦고 타는 불은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는 방식으론 ‘가고 싶고 보내고 싶은 군’을 만들 수 없다. 내년이면 창군 70년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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