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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 극동러시아] “북극항로 개척 나선 러… 불황 빠진 한국 조선업계 활로 있다”

입력 : 2017-08-07 18:49:28 수정 : 2017-08-07 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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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뱐카 조선소를 가다 / 北·中·러 3국 맞닿은 ‘전략 요충지’ / 소련 해체 후 일감 없어 폐쇄 위기 / 한·러 합작기업 변신, 재도약 준비 / 러, 내륙수운 확충 선박 수요 급증 / 해외발주 금지… 러 진출 기업 유리 / ‘한·러 공생론’ 우호 목소리 높아 “한국 측 파트너와 합작법인 설립이 마무리되는 대로 블라디보스토크자유항(FPV) 입주신청을 하고 가동이 중단된 공장 2개 동을 다시 돌릴 것이다.” 극동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주) 남단의 하산스키군에 위치한 슬라뱐카 수리조선소에서 만난 루슬란 시콜리크 베르쿠트그룹 신조선부문 부사장이 새 출발의 기대에 부풀어 말했다.

6월2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남쪽을 향해 두 시간을 달려 슬라뱐카 지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불과 2시간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북한·중국·러시아 3국 변경지역에 닿는다. 남북관계가 개선돼 유라시아대륙이 하나로 연결될 경우 핵심 요충으로 부상될 수 있는 땅이다.

한·러 합작 기업으로 부활을 꿈꾸는 연해주 하산스키군 슬라뱐카 수리조선소 부두에 해양조사선 2척이 수리를 위해 정박돼 있다.
슬라뱐카=김예진 기자
슬라뱐카 조선소는 1991년 소련 해체 전까지는 잘나가던 국영 조선소였다. 1970년 설립돼 하산스키 내 최대 규모이자 연해주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였다. 한때 직원이 5000명에 달했다. 소련 해체 후 민간에 인수된 뒤 조선소가 아니라 선박수리소로서 명맥을 유지했다.

역사 속으로 퇴장할 운명이었던 슬라뱐카 조선소는 2012년 시작된 러시아 극동 개발의 훈풍 속에서 21세기 부흥을 꿈꾸고 있다. 한국 기업인 씨텍솔루션 투자로 한·러 합작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민영화 후 조선소 1개 동만 선박 수리에 사용됐지만 앞으로 어선 건조가 시작되면 나머지 2개 동을 모두 가동하고 설비도 추가할 예정이다. 이곳을 선박 수리소에서 조선소로 탈바꿈시킨 뒤 항만 기능도 확대해 장기적으로 연간 3000만t의 물량을 소화하는 극동러시아 지역 주요 항만 겸 조선 관련 종합단지로 변모시킨다는 것이 조선소 측 구상이다.

러시아는 북극지역의 개발과 함께 러시아 내륙에서 북극항로로 연결되는 내륙 수운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정해놓은 상태다. 대대적으로 수운항만 시설을 확충하고 선박 건조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러시아는 2000여척의 어선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 소련 시절 건조돼 선령 30년이 넘은 노후 선박이다. 러시아 정부는 조선산업 육성책을 펴면서 지난해부터 모든 어선의 해외발주를 금지하고, 자국에서 선박 건조를 발주하면 선주에게 어업쿼터 20%를 추가 배정하고 금융지원도 확대하는 등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러시아의 상황은 불황에 직면한 한국 조선업계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구조조정의 후폭풍을 맞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의 중소 조선기업들은 여전히 최고의 기술과 경험, 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건조 수요와 러시아 현지 건조 시 주어질 혜택, 한국 조선업이 보유한 유휴설비와 경험·기술·인력이 러시아로 이전돼 다시 사업화되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슬라뱐카에서 여무는 한·러 합작 기업의 꿈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슬라뱐카 조선소의 지주사인 베르쿠트그룹의 빅토르 포코틸로프 대표는 “러시아는 선박 수요가 매우 높지만 조선소 숫자는 적다”며 “최근 2년간 극동 개발 정책으로 투자환경이 매우 좋아진 계기를 활용해 러시아와 한국에서 선박 건조 시 필요한 부품을 나누어 생산하고 이곳에서 조립해 선박과 조선산업 관련 제품을 생산·판매하면 양국에 모두 좋은 기회일 것”이라며 기대했다.

러시아는 극동러시아 개발에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에너지·자원, 인프라, 교통·물류, 농업, 수산업, 정보통신기술(ICT) 등이 망라된다. 한국에 대한 분위기도 중·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러시아에서는 극동지역에서 중·일이 아닌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소위 한·러공생국가론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의 지성인 블라디미르 수린이 2005년 발표한 ‘코리아선언’이 대표적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19세기 청나라 말, 제정러시아에서 빼앗긴 땅(아무르강 이북과 연해주 등)을 되찾자는 실지 수복이라는 속내를 품은 채 극동에 접근하고 있다. 러일전쟁, 1910년대 내전 당시 일본의 극동지역 진출, 쿠릴열도 영토 분쟁 등 악연이 계속되는 일본과도 협력할 수 없다. 결국 동북아에서는 오직 한민족과 상호 호혜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리 트루트네프 극동연방관구 전권대표 겸 부총리는 6월 28일 하바롭스크에서 열린 한국투자자의 날 행사에 참석해 “극동지역에 가장 우선 개발돼야 할 프로젝트는 물류 및 관련 인프라 개선”이라고 강조하며 “한국 기업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극동개발장관도 이 행사에서 “일본·중국 자본이 적극적이고 한국 자본은 얼마 전까지만 소극적이었지만 최근 많이 활발해졌다”며 “한국 자본이 좀더 많이 진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슬라뱐카(러시아 연해주)=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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