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는 2014년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더 뉴 K9)을 출시하면서 ‘V8 타우 5.0 GDI’ 엔진을 탑재했다. ‘퀀텀’이란 별도 이름도 붙였다. 경영학 등에서 ‘비약적 발전’을 의미한다. 사실 K9은 비약적 발전을 선언하기 이전부터 그 상품성은 국내 정상급이었다. 경기도 용인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를 방문하면 곳곳에 절개된 채 첨단 기술을 뽐내고 선 모델은 에쿠스가 아닌 K9이다.
당연할지 모르지만, 성능에서 어떤 스트레스도 느끼기 어렵다. 출발, 초반 가속, 핸들링, 급제동 등 대부분 환경에서 운전자 호흡과 딱 맞는다. 의외로 일부 프리미엄급 차량이 기본기에서 소소한 스트레스로 아쉬움을 주기에 K9의 기본기는 인상적이다. 여기에 ‘아이스크림’ 같은 부드러움은 가치를 한껏 끌어올린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기아차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튜닝한다”면서 “과거 일본 브랜드를 경쟁 모델로 삼았던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유럽식, 특히 독일 브랜드가 경쟁 모델”이라며 “도요타, 렉서스 등은 참고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소비자의 입맛이 독일차를 좋은 차로 꼽는 영향도 클 터다. 현대∙기아차는 G80급 이상은 벤츠∙BMW, 그 이하는 폴크스바겐을 지향점으로 삼는다. K9 후속이 현 성격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8기통 5038cc 엔진은 6000rpm에서 425마력의 힘을 낸다. G80 최고급 트림(파이니스트 4WD)이 3778cc, 311마력인 점을 감안하면 격이 실감난다. 이 5리터급 엔진은 정숙성이 탁월하다. 고요한 주차장에서 실감할 수 있다. 가속 성능도 시원해 rpm이 2000을 넘길 일이 별로 없다.
핸들링은 정확한 데다 버터를 바른 듯 부드럽다. 고급스러운 ‘감’에 최적인 옛 동력조향시스템을 바꾸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요즘 어지간한 모델이면 선택할 수 있는 ‘차선유지지원 시스템’(LKAS)이 빠진다. 그만큼 손맛이 좋다. 이 밖에도 기합급에 걸맞는 안전과 편의 사양이 빼곡하고, 뒷좌석 공간과 승차감이 탁월하다. 이중접합 차음글라스도 동급 최초로 4개 도어에 기본 적용했다. 특히 뒷좌석 ‘VIP 시트’는 버튼으로 좌석을 눞히는 동시에 앞 시트를 밀어내고 발받이를 갖추는 등 안락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다만 조수석을 유독 홀대한 점은 아쉬웠다.
퀀텀 공인복합연비는 7.6㎞/L다. 시승에선 시내 기준 5∼6㎞ 수준이고 고속도로에서 에코모드로 정속주행한 결과 8㎞까지 기록했다. 이런 월등한 상품성에도 실적은 아쉽다. 지난 달 178대가 판매됐고 7개월 누적으론 1027대가 팔렸다. 바로 위 EQ900은 7월 한달 간 1006대, 아래 G80은 3248대나 팔렸다. G80의 1∼7월 누적 판매(2만4226대)는 K9의 20배를 넘는다. 기아차가 곧 선보일 K9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에 어떤 상품성을 부여할지, 위치는 어느 지점에 설정할지 궁금해진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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