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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십시일반의 힘’ 마케팅 효과까지… ‘선한 투자’ 악용소지 맹점

입력 : 2017-08-05 13:23:42 수정 : 2017-08-05 13: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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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그 이상의 가치 / 개봉관 못 잡은 영화 “노무현…” / 펀딩으로 자금모아 스크린 상영 / 관심 분야 발전 위해 투자하기도 / 기업가치 공유·사회적 기여 의미 / ‘되는 기업’ 옥석가리기 과제 / 국내 도입 역사 고작 1년 5개월 / 고수익 기회 동시에 위험성도 커 / 사업성 있는 스타트업 선별 과제 / 해외 파산 사례도 눈여겨 볼 만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개봉관 확보를 위해서다. 지난 5월23일 오후 2시 펀딩 개시 26분 만에 투자자 184명에게서 목표액 2억원을 채웠다. 크라우드펀딩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예정대로 개봉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틀간 진행된 이 펀딩엔 507명이 참여해 목표 금액의 245%인 4억8900만원을 모금했다.

대학생 A씨는 투자자 중 한 명이다. 20만원을 투자했다. 투자 동기와 목적은 수익이 아니었다. “소액으로도 정치적 신념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였다. 수익은 덤이었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A씨는 연 5%의 투자수익률도 챙길 수 있었다. ‘노무현입니다’는 2002년 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서 지지율 2%의 꼴찌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한 영화다.

레저산업에 종사하는 40대 B씨는 레저용 반잠수정을 판매하는 펭귄오션레저의 크라우드펀딩에 200만원을 투자했다. 반잠수정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투자한 것인데, 수익뿐만 아니라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업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다. 수익률은 제법 높았다. 펀딩 규모는 1억원이었는데, 수익률이 11%에 달했다.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서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창업·벤처·중소기업의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새로운 펀딩기법이다. 기존 제도권 금융의 대출과 비교하면 규모는 보잘것없다. 작년 1월 말 시작해 1년5개월간의 실적을 보면 업체별 평균 조달금액이 1억5000만원 정도다.


그러나 크라우드펀딩은 업체나 투자자 모두에게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투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A씨의 경우가 그렇듯 투자자에게는 사회적 의미를 담은 투자인 경우가 많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영화 ‘귀향’(2016년)에 후원형 투자가 쇄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업체로서도 돈만 조달하는 게 아니라 회사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을 모으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업운영 패러다임인 셈이다. 이런 강점 덕에 크라우드펀딩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영역도 아이디어 상품 중심으로 시작해 영화 등 문화산업을 거쳐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프로젝트들로 확대되고 있다.

◆투자 이상의 가치, 크라우드펀딩

‘모헤닉게라지스’는 수제자동차 제작회사다. 2013년 3월 설립됐다. 회사 블로그 중심으로 자동차 마니아들이 몰려들었다. 기업 자체가 이 같은 팬들의 응원과 투자로 성장했다. 여기에서도 크라우드펀딩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3억원 가량을 모았는데, 돈 자체보다도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더 가치 있는 자산이다.

김태성 모헤닉게라지스 대표는 “단돈 몇십만원이라도 참여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돈보다 사람 모으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의 큰돈은 회사 운영에 도움은 되지만 문화적 가치 창출이 어려운 데 비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인 소액주주는 투자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소비도 하고 영업도 하면서 회사 가치를 공유해 나간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자본시장의 자본보다 소액주주의 자본을 더 가치 있게 보는 이유다.

크라우드펀딩은 기존 제도권 금융의 혜택을 보기 어려운 업종의 사업자에게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2015년 1월 설립된 수제버거체인 ‘바스버거’가 여섯 곳에 매장을 내는 데는 크라우드펀딩이 톡톡히 기여했다. 서경원 바스버거 대표는 “작은 요식업체는 은행이나 정책자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 그러던 차에 크라우드펀딩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숨통을 텄다”고 말했다. 바스버거가 지금껏 세 차례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돈은 3억원이다.

◆영역 어디까지 확장하나

애완견 드라이룸, 반려동물 장례도우미 서비스,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생활맥주’, 장애인 전문여행사, 심폐소생술 교육 키트…. 모두 크라우드펀딩으로 아이디어가 현실화한 사업들이다. 크라우드펀딩은 자칫 사장될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역은 끊임없이 확장 중이다. 요즘은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이 법인화하면서 주주를 모집하는 크라우드펀딩이 진행 중이다. 펀딩 기간은 이달 22일까지인데, 이미 목표액(3억원)을 거의 채웠다. 세바시는 500명 규모의 대형 강연회로, 지금껏 134회 열렸고 1200개 이상의 영상 콘텐츠의 누적 조회 수가 4억2000만뷰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적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크라우드펀딩의 함정

1년여 전 영국의 작은 기업 리버스(Rebus)가 파산했다. 100명이 넘는 크라우드펀딩 투자자들이 투자금 전액을 날렸다. 1인당 손실액이 작게는 5000파운드(당시 환율 기준 850만원), 크게는 13만여파운드(2억2000여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3년 내 10배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홍보에 혹해 돈을 넣었다가 홀랑 날렸다. 리버스는 재무관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영국의 스타트업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작년 3월경 소개한 크라우드펀딩 기업의 실패 사례 중 하나다. FT는 당시 이런 소식을 전하며 투자자들을 향해 “조심하라”며 경고음을 울렸다. 이 신문은 앞서 2015년 11월 중순 2011∼2013년간 이뤄진 크라우드펀딩 기업의 ‘성적표’를 입수해 보도했는데 성적은 초라했다. 5개 중 1개는 사업을 이미 접은 상태였다. 투자자들이 원금 전액을 날렸음은 물론이다.

한국이라고 다르리란 보장은 없다. 본격적인 한국 크라우드펀딩 역사는 고작 1년 반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금을 모을 때 사업계획서와 기업 재무정보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기업정보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라우드펀딩 대표기업 와디즈 윤성욱 이사는 “여유 자금으로 투자하고,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할 것”을 권장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백소용 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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