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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제 길 가는 기성작가… 사색의 향기·연륜을 담다

입력 : 2017-08-03 21:06:13 수정 : 2017-08-03 2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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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문학무크 ‘소설’ 창간
소설만 수록하는 문학무크 ‘소설’(문학비단길) 창간호가 나왔다. 문예지가 많다고는 하지만 정작 소설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은 한정돼 있는 데다 “대부분 잡지가 몇몇 인기 있는 젊은 신인의 낯선 작품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묵묵히 제 길을 가고 있는 많은 작가들이 발표 지면을 얻지 못해 어려워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소설 전문 잡지다. 발행인(허택)과 편집주간(양진채)도 모두 소설가가 맡았다. 반연간 형태로 발간될 창간호에는 작가 10명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강동수는 ‘편의점은 살아 있다’에서 지난해 촛불시위 전후 도시 풍경을 정밀하게 드러낸다. ‘오버워쳐’ 2호라는 CCTV카메라를 화자로 내세워 일당을 받고 태극기 시위를 나온 노인들, 순정을 농락당한 ‘성냥팔이 소녀’, 대리운전을 하는 남자들이 ‘마케팅 에이전트’라고 불리는 ‘알바’들과 함께 소묘된다. 이평재는 ‘숨어버린 사람’들에서 세월호 비극의 여파를 파고든다. 잠수사로 구조 활동에 참여했다가 폐인처럼 변해버린 남편과 불의를 참지 못해 반항하지만 참으라는 말만 듣던 아들의 자살이 끔찍하게 아픈 현실로 변주된다. 허택의 ‘매일 포장마차에 출근하다’는 보다 직접적으로 ‘도둑’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내를 통해 현실을 웅변한다.

현실을 직접 반영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에둘러가는 단편들도 여럿 포진했다. 박찬순은 ‘레몬을 놓을 자리’에서 교토 기행을 하며 정지용의 흔적을 좇는다. 지용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가지이 모토지로의 소설 ‘레몬’을 떠올리며 폭탄 형상의 레몬, 그 레몬 폭탄이 놓일 마음의 자리를 찾는다. 양진채는 ‘참치의 깊이’에서 “딱딱하게 언 것들은 저마다의 온도를 가지고 있고, 언다는 것도 어둠처럼 깊이가 있다”고 설파한다. 잠을 잘 때도 미친 듯 헤엄쳐야만 살 수 있는 참치 같은 숙명을 지닌 술집 댄서의 아픔을 칼끝으로 감각하는 단편이다.

채현선의 ‘풀 문 Full Moon’은 첫 문장부터 “내 마지막 단어가 ‘노래’였으면 좋겠다”고 시작하거니와 시적인 문체에 실린 노래 같은 소설이다. 서커스에서 칼 던지는 남자와 그 칼의 과녁으로 서는 여자, 그들의 사랑은 “서커스와 같아 전부를 걸어야 얻어질 수 있는 세계”였고 “서로 온전하게 믿어야 살아남는 칼의 곡예”였다. 이들 단편 외에도 ‘세트 쇼’(권현숙), ‘비원으로 향하는 길’(정태언), ‘담’(진보경), ‘마론’(정광모)이 수록됐다. 편집진은 “이제는 무뎌질 법한 나이와 연륜이 되어도 소설 쓰기 앞에서 늘 경건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나아가는 많은 소설가들이 있다”면서 “그런 소설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소개하는 잡지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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